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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위기에 집안싸움 하는 한나라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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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안철수 바람이 한바탕 지나갔는데도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일으킨 돌풍이 거셌던 것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특히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이 높았다. 안 교수 본인이 한나라당에 대한 ‘응징’을 언급했을 뿐 아니라 여론조사 결과 안 교수 출마포기 이후 그의 지지자 70%가량이 야당을 지지했다. 심각한 국민적 경고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집권당으로서의 책임을 절감하기보다 계파별 이해에 집착하는 집안싸움을 그치지 않고 있다.

 안철수 바람 이후 열린 어제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중진 연석회의 풍경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말로는 ‘자성(自省)’을 얘기하면서도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 신드롬은) 국민들의 실망과 불신의 폭발”이라는 분석도 맞고 “당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에 왔다”는 진단도 맞다. 그러나 말뿐이다. 자성론을 펼치는 와중에도 구체적인 내용을 두고는 고성이 오갔다. 예컨대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강용석 의원을 감싸고 돌아 제명안을 부결시킨 한나라당의 태도는 ‘기득권’과 ‘낡은 정치’로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원희룡 최고위원이 이에 대한 자성론을 펼치자 오히려 이를 반박하는 목소리가 더 높았다.

 연석회의 풍경은 겉으로 드러난 분열상이다. 드러나지 않는 한나라당의 위기상은 더 심각하다. 안철수 교수의 양보로 시민운동가인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 유력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는데 한나라당은 후보를 구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곧 대통령을 만나 김황식 국무총리를 차출하자고 건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물론 김 총리 본인도 “그럴 일 없을 것”이란 반응이다. 홍 대표는 며칠 전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등장해 생방송을 진행하던 중 진행자인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에게 갑자기 “서울시장 출마할 생각 없느냐. 한나라당에서 모시겠다”고 했다가 손 교수로부터 “소는 누가 키우느냐”는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물론 후보를 널리 구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서울시장 출마는 그렇게 불쑥 불쑥 던져볼 사안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이런 파행을 보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부의 분열과 이견 때문이다. 계파와 개인별 이해를 모두 충족시켜줄 후보는 없다. 중요한 것은 내부의 갈등과 이견을 적절히 타협하고 수렴해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내놓는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의 승패도 중요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제대로 된 책임정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절실하다. 그것이 국민의 신뢰를 얻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길이며, 이 나라 보수 정치의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이 무서워할 대상은 안철수가 아니라 그를 지지한 유권자들이다. 안철수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유권자들은 여전히 눈을 부릅뜨고 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안철수 바람은 미리 맞은 백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