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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낙하산 인사는 망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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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아무리 정권 말기에 접어든다지만 ‘묻지마’식 낙하산 인사가 많아도 너무 많다. 이상목 예금보험공사 감사는 청와대 국민권익비서관 출신으로 지난 6월에 기업은행 감사를 노리다가 여론의 비판에 퇴짜를 맞은 경험이 있다. 그는 ‘재수(再修)’를 통해 예보로 낙하 지점을 바꿔 가뿐히 내려앉는 집념을 보였다. 그의 감사 선임은 비공개로 조용히 진행됐다. 옛 재정경제원 1차관보와 이명박 대선캠프의 상임 특별보좌역을 거친 김정국 기술보증기금 이사장은 퇴임 14년 만에 다시 화려하게 등용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새로 선임된 허증수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은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 강화도에서 장어 향응 사건으로 잡음을 빚은 인물이다.

 어디 그뿐이랴. 지난 총선에 떨어진 뒤 KT에 부회장 자리까지 만들어 입성한 석호익 부회장은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사표를 냈다. KT는 그의 퇴임과 함께 ‘부회장’직과 그가 관할해온 대외 업무총괄(CR) 부문을 아예 통째로 없애버렸다. 그야말로 위인설관(爲人設官)의 전형이다. 3선 의원 출신의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경영평가에서 B등급을 받아 간신히 연임에 성공했다. 그런데도 자신의 지역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 본심은 (여의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며 마음이 콩밭에 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한나라당 조직국장 출신의 비례대표 34번은 IBK신용정보 부사장에 앉았고, 특정대학 출신의 동서발전 사장은 지식경제부의 후임사장 추천위원회를 중단시키면서까지 연임에 성공했다.

 공기업과 금융회사에 전방위로 쏟아지는 낙하산 군무(群舞)를 보면서 우리는 좌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러 전문성이 없는 분야만 골라 평소 신세 진 사람에게 한 자리씩 베푸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부산저축은행 사태 등에서 정치권·모피아·금융감독원 출신의 낙하산 인사가 얼마나 큰 부작용을 낳았는지 깨닫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정권 말기에 전문성과 능력이란 원칙은 학연·지연·정권과의 친소(親疏)관계 앞에 소리 없이 무너지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인사는 만사(萬事)가 아니라 망사(亡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