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호
정치부문 차장
김황식 총리 차출론이 나왔다. 한나라당에서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7일 오전 구상찬 의원 등이 국회에 출석한 김 총리를 붙잡았다. 그러곤 “서울 지역 의원 상당수가 출마를 희망한다. 몸을 던져 달라”고 청했다. 구 의원이 서울이 지역구인 정두언·정태근 의원 등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그들도 “잘했다”는 반응이었다. 홍준표 대표도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만나 건의할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논리는 이런 거다. 대법관·감사원장을 지낸 김 총리의 이력이 그럴듯하고, 호남 출신이어서 ‘표가 된다’고 본다. 8일 일부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의원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뒤지면서 인물난에 허덕이는 탓도 크다. 하지만 김 총리는 바로 “적절치 않다”고 고사(苦辭)했다. 차출설은 그냥 사그라질 것 같다.
소동을 보며 긴 한숨이 났다. ‘안철수 쓰나미’를 겪은 당이 맞나 싶어서다. 김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잘한 인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순수와 소신’이란 점에서 돋보이는 총리다. 국정에 대한 폭넓은 식견도 인상적이었다. 그런 총리가 탐이야 났겠지만 정말 출마시키겠다는 건 한나라당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국정을 총괄하는 총리를 ‘위기다’ ‘인물이 없다’는 이유로 차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처구니없다. 선거가 50일이 안 남았다. 역대 총리 가운데 재임 중 선거에 나간 일도 없다. 주먹구구식 정당정치다. 한나라당이 ‘안철수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아직도 이해를 못한 거다. 안 교수의 공적 헌신, 진정성 그리고 양보하는 미덕을 벤치마킹할 생각은 못하나. 이명박 정권이 가진 취약점 중 하나가 인사다. 정권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할 시점에 자리를 잡고 있는 총리를 빼가겠다는 것도 여당으로서 할 일도 아니다.
차출론은 다분히 정치공학적이다. 당적도 없고 나설 의사도 없는 김 총리에게 야당 후보와 싸울 수 있는 구도를 맞추기 위해 나서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그건 국민을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사심(私心)이 짙어 보인다. 이 논란 아래엔 나경원 의원의 출마를 꺼리는 정파적·개인적 관계도 깔려 있어 볼썽사납다. 정당은 선거에서 후보를 내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게 목적이라지만 이젠 그것마저 새로운 정치 프레임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민심을 못 읽는 사례는 안 교수가 단일화를 이룬 다음 나온 논평에서도 극명했다. 김기현 대변인은 안 교수를 ‘강남 좌파’로, 단일화를 ‘좌파 단일화 정치쇼’라고 규정했다. 선거 때면 반(反)보수세력을 색깔론으로 공격하는 행태다. 오죽했으면 8일 당 공식 회의에서 “좀 신중해야 한다”(유승민 최고위원)는 자탄이 나왔을까. 보수는 오히려 색깔론에 더 진중해야 한다.
‘안철수 현상’을 불러온 당사자는 한나라당이다. 오세훈 전 시장의 시장직 사퇴가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강용석 제명안 부결은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 한나라당은 변화를 넘어 발상 자체의 전환이 필요하다. 수원수구(誰怨誰咎,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느냐)다.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