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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오랜 외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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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사람은 누구나 가족의 사랑에 기대어 산다. 그 사랑의 바탕은 ‘함께한다’는 거다. 함께하지 못할 때 가정의 안식은 위태롭고, 그래서 더 가족의 사랑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꼭 10년 전 9·11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희생자들이 마지막 순간 남긴 메시지도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당시 미국 언론에 보도된 가족과의 마지막 휴대전화 통화 내용들은 한결같다.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아. 그런데 난 아마 살 수 없을 것 같아. 여보 사랑해. 아기들 잘 부탁해.”(스튜어트 T 멜처) “여보 정말 당신을 사랑해. 살아서 당신을 다시 봤으면 좋겠어.”(케네스 밴 오켄이) “엄마, 우리 납치당했어. 엄마,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마크 빙햄) 이제 함께할 수 없기에 더 절절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지금도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가족의 죽음만이 아니다. 가족의 실종과 생사불명도 크나큰 고통이다. 6·25전쟁은 우리 민족이 집단으로 그 고통을 경험해야 했던 비극이다. 북에서 피란민 300만 명이 남으로 내려오고 1000만 명에 이르는 이산가족을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1983년 여름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 벌어진 여의도 광장은 헤어진 혈육을 찾으려는 이산가족들의 눈물로 얼룩졌다. 가족을 만난 사람은 기뻐서, 만나지 못한 사람은 서러워서 울었다. 그때 수없이 들렸던 노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는 이산가족들의 애타는 심정 그 자체였다.

 가족의 실종은 일상에서도 숱하다. 해마다 일어나는 실종 사건이 3만 건이다. 실종자 신고 증가율이 연평균 8.8%일 정도다. 가족의 실종은 남은 가족을 병들게 하고 경제적 파탄을 가져오기도 한다. 99년 실종된 18세 여고생 송혜희양의 아버지는 생업을 포기하고 딸을 찾아 나섰고, 우울증에 걸린 엄마는 끝내 세상을 버렸다. 12년째 트럭에 전단을 붙이고 전국을 돌며 딸의 흔적을 찾고 있는 송양 아버지의 소원은 한 가지다.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딸 얼굴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은 잃어버린 가족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경찰이 추석을 앞두고 섬과 보호시설에서 실종자 1483명을 찾아내 가족 품에 안기게 했다고 한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올 추석엔 실종가족이 반드시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온다는 믿음이 좀 더 많이 현실이 됐으면 좋겠다. 실종이 아니라 ‘오랜 외출’에서 돌아오듯 말이다. 명절이면 더 그리워지는 게 가족 아닌가.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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