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교포 2세 무성영화 변사 월터 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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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사(辯士)는 현장의 영화 제작자들과 객석의 관객들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와 같습니다. "

제1회 전주 국제영화제를 찾은 재미교포 2세 미국인인 월터 류(45)씨. 시집을 두권 펴낸 시인이자 한국 관련 다큐물 제작 PD인 그는 '무성영화 변사' 라는 이색적인 직함도 갖고 있다.

지난달 29일 '씨네 21' 에서 우리 무성영화의 고전인 '검사와 여선생' 에서 40여분간 영어로 대사를 붙여 외국인 60여명 등 관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최후의 변사' 신철(72)씨로부터 "감칠 맛이 나고 구수하게 해 배우들의 동작과 대사가 척척 맞아 떨어졌다" 는 호평을 들었다.

그가 미국에서 변사라는 생소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81년. 뉴욕시가 축제를 하면서 일본 영화의 자막 번역을 의뢰하자 스스로 제의해 자신의 목소리까지 담은 것. 82년부터 우리 무성영화 춘향전.심청전을 재편집해 미국 내 영화제에서 공연하는 등 변사로 활동해 왔다.

"헐리우드의 눈 높이에서 볼 때 변사는 특이한 존재입니다. 영화를 상영하는 시기.장소.상황에 맞게 재해석, 관객들의 이해를 도와 준다는 점에서 제작자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검사와 여선생' 은 그에겐 의미가 특히 깊은 작품. 지난해 9월 컬럼비아대에서 열린 첫 공연을 지켜본 아버지(72)가 "신산스러운 삶이 고스란히 담긴 우리 세대의 얘기를 감동적으로 잘 전달했다" 며 처음으로 예술가로 인정했다고 한다.

"전주영화제는 출품작들의 내용.형식 등에서 어느 국제 영화제와 견주어 손색 없습니다. 이만한 영화제를 열 수 있다는 것은 이 고장, 나아가 한국의 자랑입니다. "

브라운대에서 인지심리학을 전공했고 영문학.한국학 등으로 석사과정을 마친뒤 IVY리그서 5년동안 한국학.창작론 등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 UCLA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이상.김유정 등 '일제치하 모더니스트들' 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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