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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견 10년 추억 안고 사는, 내 이름은 보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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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으로 활약했던 보은이는 3년 전 정인영(14)양네 새 가족이 되면서 이제 보호를 받으며 여생을 보내는 입장이 됐다. 지난달 29일 인영양이 서재에서 보은이를 쓰다듬고 있다. [사진=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제공]

언제 들어도 따뜻한 말 ‘가족’. 한가위 같은 명절 즈음이면 더욱 그리운 단어다. 그런데 사람만 가족일까. 개·고양이·말 같은 반려동물도 엄연히 가족 역할을 한다. 아니, 때로는 사람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람을 돕고, 위로해준다.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으로 활동하다 은퇴한 ‘보은이’, 장애아동들을 돕기 시작한 말 ‘재즈’가 그렇다. 그들의 마음을 살짝 들여다 봤다.

오후 4시. 어김없이 현관에서 우당탕 소리가 난다. 중학교 2학년인 우리집 막내 인영(14·서울 서초동)이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모양이다. 들어오자마자 “보은아, 언니 왔어~. 어디 있니?”하며 나를 찾는다. 흠, 내가 한 살 더 많은데, 자꾸 자기가 ‘언니’란다.

내 이름은 보은이. 순하고 사람을 좋아하기로 소문난 ‘래브라도 리트리버’종이다. 태어난 곳은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근처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앞이 보이지 않아 혼자 움직이기 불편한 분들의 눈이 되어주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일하다 은퇴했다. 올해 열 다섯살이 된 나는 사람 나이로 치면 할머니다. 그래도 인영이네 가족에게는 그저 귀여운 막내다.

10년간 함께한 보은이와 김예소리씨.

인영이네 집에 온 건 3년 전인 2008년.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물의 형체만 파악할 수 있는 김예소리 엄마의 ‘눈’이 돼 전국을 돌아다닌 지 10년 만이었다. 사실 학교에 있는 다른 친구들은 평균 8년 정도 안내견 활동을 한다. 나이가 들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체력이 약해져 오히려 보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은퇴한다.

나는 유달리 성격이 온순하고 예소리 엄마의 말을 잘 들어 훈련사 선생님이 은퇴시기를 1년 이상 늦추도록 해줬다. 하지만 귀에 염증이 생겨 큰 수술을 하게 되자 엄마도 어쩔 수 없었다. 수술을 마치고 오랜 만에 엄마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그저 반가운 마음에 엄마 주위를 맴돌았지만 엄마는 계속 울며 한 시간 넘게 서 있었다. 얼마 후 엄마는 새로운 안내견 동생 ‘코미’와 거리를 나섰고, 나는 학교에 남게 되었다.

엄마 같은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기 위해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훈련을 받았다. 중간 중간 힘든 과정도 있었지만, 난 자랑스럽게 이겨냈다. 처음 엄마를 만났을 때 엄마의 나이 서른다섯.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였지만 마치 딸이 생긴 기분이었다고 한다. 정말 나는 엄마의 든든한 ‘큰딸’이 됐다. 엄마가 길을 나서면 나는 항상 반 발자국 앞에 서서 걸으며 불편함이 없는지 살폈다.

국악 성악곡으로도 불리는 ‘정가’를 전공한 엄마는 중요무형문화재 30호 이수자였다. 그래서 전국으로 공연을 다녔고, 덕분에 나는 비행기까지 타봤다. 엄마가 공연을 할 때는 두 시간이 훌쩍 넘도록 조용히 엄마 곁에서 관람을 했다. 그래서 보는 사람마다 “개가 어쩜 이렇게 얌전해요”, “웬만한 애들보다 더 의젓하네”하며 칭찬해주곤 했다.

엄마의 공연은 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시간으로 마무리됐다. 사람들이 덩실덩실 가락에 맞춰서 춤을 추면 나도 같이 꼬리를 흔들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유달리 큰 꼬리 덕분에 엉덩이도 같이 실룩거리곤 했는데, 그 모습을 본 엄마가 ‘춤추는 꼬리’라는 동화를 쓰기도 했다.

난 엄마와 마음의 걸음 또한 함께 걸었다. 엄마는 내게 그날의 기분, 즐거웠던 일, 힘든 일들을 늘 이야기해 줬다. 엄마가 결혼을 한 후에도 함께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낸 건 나였다. 그래서 엄마가 래현이를 낳았을 때, 난 엄마의 사랑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스트레스로 일주일 동안 화장실도 못 갔다.

평소 조용하고 친절한 엄마가 유독 ‘싸움꾼’으로 돌변하는 때가 있었다. 바로 사람들이 나한테 함부로 대하거나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는 경우였다. 엄마는 “나를 도와주는 착한 우리 딸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내가 참을 수 없어”라며 오히려 나한테 미안해 했다.

은퇴 후 엄마와의 따뜻했던 추억을 되새기며 학교에서 지내고 있을 때, 인영이네를 만났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인영이는 『안내견 탄실이』라는 책에 푹 빠져 있었다. 안내견 학교에 방문한 인영이는 ‘은퇴견 홈케어’ 프로그램을 알게 됐고, 선생님은 나를 소개시켜 줬다. 은퇴견 홈케어는 이미 훈련된 안내견의 남은 생을 돌봐주는 것이라 크게 까다로운 조건이 없다. 그렇게 나는 인영이네의 새 가족이 됐다.

함께 산책을 나가면 신기해 하는 친구들 덕분에 인영이의 안내견에 대한 지식은 거의 훈련사 선생님 수준이 됐다. 새로운 엄마는 보통 애완견과 달리 내가 배운 게 많고 점잖다며 이뻐하신다. 사실 올 여름엔 유난히 몸이 버겁다. 이젠 앞발 하나 까딱하기 싫고 소리도 아예 들리지 않는다. 그런 내가 심심할 만도 한데, 인영이는 내가 없어지면 슬플 것 같다며 오히려 걱정만 한다. 그래, 난 안다. 내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지금도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모두들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이예지 행복동행 기자

매달 둘째·넷째 목요일에 발행되는 ‘행복동행’ 다음 호는 본지 창간 특집호 제작 관계로 한 주 뒤인 9월 29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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