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로 인터넷 정보를 듣는다

중앙일보

입력

미국 캘리포니아州 마운틴뷰에 있는 신생 인터넷 벤처회사 텔미(Tellme)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어수선하다. 실제로 그런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직원들이 스쿠터 보드를 타고 마룻바닥 위를 질주하며 돌아다니는 가운데 중역들이 전화기를 붙들고 인력 충원에 열을 올린다.

건물 바로 앞에는 기찻길이 있어 15분마다 2층 통근기차가 굉음을 내고 지나가면 벽이 덜덜거리고 칠판이 흔들린다. 넷스케이프의 베테랑이었던 최고경영자 마이크 매큐(32)는 통근기차에 대해 모르고 있던 한 손님이 “지진이다!”고 외치고는 문을 향해 뛰어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 직원 1백 명의 텔미가 뒤흔들려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전화시장이다. 텔미는 비보컬(BeVocal)·쿠액.컴(Quack.com) 등과 함께 ‘음성 포털’로 불린다. PC를 초월한 인터넷 응용분야의 확대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에 편승, 급발전하고 있는 음성인식 기술을 바탕으로 수신자 부담 전화로 야후 같은 웹 포털 사이트의 모든 기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텔미는 4월 초 시범 서비스를 개시했다.

전화를 걸어 ‘주가’를 요청한 후 번호를 누르지 않고 회사명을 말하면 주가와 그 회사의 최신 뉴스를 들을 수 있다. 스포츠·날씨·교통·식당에 대해서도 유사 서비스가 제공된다. 넷스케이프 부사장 출신으로 前 넷스케이프 최고경영자 짐 박스데일과 함께 텔미의 이사이자 투자자인 피터 커리는 “우리에게는 20억 명의 이용자를 가진 기존 전화망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음성 포털 분야가 겨우 출발단계지만 텔미는 이미 눈길을 모으고 있다. 쟁쟁한 인력구성 때문이다. 텔미는 넷스케이프 출신에다 라이벌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사업부 출신 몇 명을 영입했다. 자금력도 탄탄하다. 매큐는 박스데일의 투자 그룹 외에 넷스케이프 공동설립자 마크 앤드리슨, 브래드 실버버그 前 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 등으로부터 5천4백만 달러의 자금을 끌어들였다.

음성 포털들은 앞으로 아마존 같은 웹 사이트의 전화 서비스를 맡으려 하고 있기 때문에 텔미는 투자자 진용이 막강하다는 점에서 경쟁사에 비해 유리한 입장이다. 현재 텔미는 오는 6월 출범 예정인 사용자 편의성에 초점을 맞춘 간편 서비스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4월 초의 한 회의에서 직원들은 기본적인 문제들과 씨름했다. 음성인식 기술이 아직 완벽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터치톤 입력방식과 같은 백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인가. 5초간의 광고에 대한 광고료의 적정수준은 얼마인가(가령 “텔미 스포츠는 파워에이드 제공입니다” 같은 메시지). 시범 서비스 이용자를 확대하면서 대대적인 출범으로 시장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텔미로선 그런 문제는 발등의 불이다.

그러나 장기 사업구상도 필요하다. 매큐에 따르면 텔미는 미국 내 20만 개 식당의 이름과 주소를 녹음했으며 다른 업종도 추가할 계획이다. 어느 점포를 조회하면 찾아가는 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그 점포의 전화에 무료로 자동 연결해준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수신자 부담 전화요금이 인하되긴 했지만 음성 포털의 고정비 부담이 적지 않으며 짤막한 음성 광고나 전자 상거래 수입으로 그것을 충당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또 벨사우스 같은 전화회사들이 직접 음성 포털 서비스 진출을 꾀할 가능성이 있다. 이용자들이 음성 포털에 호의적일지도 확실치 않다.

주피터 커뮤니케이션스社의 선임 분석가 세이머스 매커티어는 웹 검색이나 휴대폰 화면을 통한 정보검색에 익숙한 사람들로서는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것이 답답할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웹 브라우저를 이용하면 원하는 정보를 얻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리콘 밸리의 텔미 같은 신생 업체들은 신경제 시장에 1백20년 역사의 전화가 발디딜 틈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음성 포털 시장의 선두주자들

텔미와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는 음성 포털은 20여 개가 넘는다. 주목할 만한 3개사를 소개한다.
비보컬: 최근 4천5백만 달러의 자금을 조성했다. 창업자들이 음성인식과 전자통신 분야 출신이다.
쿠액.컴: 미니애폴리스에서 시범 서비스를 성공리에 마쳤다. 그러나 이름이 사람들에게 어필할지가 의문이다.
인포 바이 보이스: 벨사우스가 애틀랜타에서 실시한 시범 서비스. 다른 전자통신 회사들도 뛰어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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