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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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오만가지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중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추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기억… 당신은 어떤 기억을 어느정도 신뢰하고 얼마나 그것에 의존하는지…홍상수 감독의〈오! 수정〉흑백영화로 만든 이 영화는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그동안 그가 만들어 왔던 약간은 복잡한 구성과 다소 모호하고 지루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우선 재미있다.

96년〈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98년 〈강원도의 힘〉으로 좋은 평을 받았던 그가 이번에는 스토리를 반복하면서 두 사람의 다른 기억을 보여준다.

작가 수정(이은주)과 감독 영수(문성근) 그리고 재훈(정보석). 이 세명의 관계가 재훈과 수정의 시선으로 한번씩 그려지는 이 영화에서 스토리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먼저 영화는 재훈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 수정을 만났을때의 일과 술자리 그리고 키스까지.

그러나 이 영화는 더 이상 스토리를 진행시키지 않고 다시 처음으로 간다. 그리고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이번에는 수정의 시선 즉 수정의 기억이다. 그러나 대화 내용이나 대화의 상대, 상황 등이 같지가 않다. 관객은 혼란스럽다.

두 사람이 기억하는 사실은 차이가 많다. 그것은 식당에서 키스하다 떨어뜨린 것이 포크였는지 스푼이었는지, 재미있는 것을 보여준다며 키스한 사람이 재훈이었는지 영수였는지, 술을 많이 먹냐는 질문을 밥먹을때 했는지 술자리에서 했는지…어느 누구의 대화가 진실된 기억인지 이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은 자신이 기억하는 것이 옳다고 믿고 싶을 것이다. 그것이 결국 거짓이더라도, 현실은 따로 있더라도 감독은 그것을 그냥 덮어버린다. 그리고 궁금해 하는 관객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쨌든 짝짓기에 성공하면 만사쾌조'.

두 사람의 기억이 어찌되었던 간에 사실은 하나로 흘러갈뿐이고 두 사람 각각의 기억이 그렇게 자신에게 중요하다면 그 기억을 가지라는 것. 이렇듯 인간은 엉뚱한 기억에 매달릴 정도로 나약하고 영화는 이상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사실만을 나열한 채 막을 내린다.

이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재훈의 대사는 엉뚱한 것이 많다. 이것이 폭소를 자아내기도 하는데 이것은 등장하는 소제목과 그에 따른 경쾌한 피아노곡과 잘 어울린다. 그리고 흑백톤이 기억이라는 모티브와 잘 어울리는 홍상수 감독의 색다른 영화다.

P.S.
개막식에는〈오! 수정〉의 홍상수 감독과 이은주씨가 참석하고 정보석씨와 문성근씨는 참석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홍상수 감독은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이 작품이 일본에서 현상되는 이유로 코딩이 완전히 된 것이 아니다. 장면에 다소 어두운 장면이 있더라도 양해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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