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골머리를 썩힐까, 썩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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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어떻게 하면 알뜰하게 장을 볼까 골머리를 썩히고 있어요!” 추석을 앞두고 장바구니 물가가 껑충 뛰어 차례상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너도나도 이런 고충을 토로한다.

 알뜰 장보기에 골몰하는 모습처럼 어떤 일로 몹시 애를 쓰며 생각에 몰두하다는 뜻으로 ‘골머리를 썩히다’는 표현을 사용해도 될까? ‘골머리를 썩히다’로 잘못 알고 쓰는 사람이 많지만 ‘골머리를 썩이다’가 올바른 표현이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대형 할인매장, 재래시장을 돌며 골머리를 썩혀 보지만 항상 예산 초과다”와 같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 ‘골머리를 썩여’로 바루어야 한다. ‘골을 썩여’ ‘골치를 썩여’ ‘머리를 썩여’도 같은 의미로 쓸 수 있다.

 ‘썩히다’와 ‘썩이다’ 모두 ‘썩다’의 사동사이지만 그 뜻은 다르다. ‘썩히다’는 유기물을 부패하게 하다, 사람의 재능 따위가 제대로 못 쓰이고 내버려진 상태에 있게 하다는 의미다. “음식물을 썩혀 거름을 만들다” “아까운 재능을 썩히다니!”와 같이 사용한다. ‘썩이다’는 걱정이나 근심으로 마음이 몹시 괴로운 상태가 되게 하다는 뜻이다. “부모 속 좀 그만 썩여!” “그 일로 마음을 썩인 거니?”처럼 쓰인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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