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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제로섬 아니다, 협조해야 바라는 것 얻을 수 있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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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호 04면

조셉 나이 교수는 상호의존·소프트파워·스마트파워 등 외교·안보 분야 종사자뿐만 아니라 언론에서 자주 쓰는 용어를 제안했다. [중앙포토]

“우리는 활활 타는 대문을 통해 새 천년으로 들어왔다. 오늘 만약 9·11의 공포를 경험한 우리가 더 잘 보고 더 멀리 본다면 인류가 나뉠 수 없는 하나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2001년 12월 10일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한 말이다.

9·11테러 10년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의 외교진단

11일은 9·11 테러가 발생한 지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10년 전 그날, 항공기 자살테러로 뉴욕 세계무역센터(WTC)가 붕괴하고 워싱턴 DC에 있는 국방부 펜타곤이 공격을 받은 참극이 발생했다.
미국이 테러와의 싸움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군사력·경제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세계의 나머지로부터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하면서 ‘소프트파워(soft power)’라는 개념을 제시한 게 조셉 나이(74) 하버드대 석좌교수다. 다시 말해 “자국의 가치와 문화로 다른 나라들을 끌어당기는(attract) 능력”이 소프트파워다. 9·11테러 10주년을 맞이한 미국과 세계 앞에 전개될 국제정세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1일 전화로 나이 교수를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국 정책 결정자들은 9·11 이후의 국면에 잘 대처했는가.
“잘 대처한 면이 있고 그렇지 않은 면이 있다. 보안 절차를 향상시켜 9·11 같은 사태의 재발 가능성을 줄인 것은 잘한 일이다. 알카에다 활동을 억제하고 빈 라덴을 사살한 것, 국내 안보 개선도 성공적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엄청난 전략적 오류를 범했다. 미국의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에 손상을 입힌 이라크 침공은 불필요했다.”

-9·11 10주년을 맞는 미국에서 9·11의 기억과 교훈은 희미해질 것인가.
“9·11의 기억과 교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테러에 대한 우려는, 예컨대 9년 전에 비해 약해졌다. 공포와 불안의 정도는 줄었지만 미국인들이 공항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처럼 위협의 기억이 남아 있다.”

-미국은 9·11 이후 본격화된 대(對)테러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는가. ‘아랍의 봄’으로 미국은 중동 지역에서 더 많은 소프트파워를 갖게 됐는가.
“미국은 알카에다와 대결에서 진전을 이뤘다.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테러주의는 끝나지 않았다. ‘아랍의 봄’은 빈 라덴의 어젠다와 다른 방향에서 아랍권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알카에다를 약화시킨 것이다.”

-국제관계에서 권력이 다차원적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경제력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정책결정자들은 문화 국력이나 소프트파워보다 경제력 증강에 집중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을 경제 문제로 좁혀보는 것은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다. 모든 시장은 정치적인 틀(framework)에 의존한다. 정치의 틀에 영향을 주는 것은 군사력, 법과 질서, 문화적 규범 같은 것들이다. 한 가지의 힘만이 지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경제력·군사력·소프트파워가 모두 중요하다.”

미·중 패권 나눠야 경제·기후 문제 해결
-아시아에서 소프트파워는 무슨 의미를 갖는가.
“소프트파워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소프트파워는 김정일이 핵개발 계획을 바꾸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에서 소프트파워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주석이 2007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행한 연설 이후 중국은 소프트파워 증진을 위해 수십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소프트파워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국가이익 추구에 필요한 도구 중 하나다.”

-친미 정책이 소프트파워 증진에 도움이 되는가.
“나라마다 소프트파워의 원천이 다르다. 소프트파워가 친미적일 필요는 없다. 예컨대 이란은 시아파 이슬람 신자들에게 소프트파워를 갖고 있다. 미국에 대항하는 소프트파워다. 소프트파워와 관련해 이란과 미국은 중동에서 경쟁하고 있다. 소프트파워는 ‘제 눈에 안경’이다. 소프트파워를 행사하려는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행사하는 소프트파워는 나라나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국제정치학의 신현실주의(neo-realism)에 따르면 국제체제의 구조가 국제정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소프트파워는 구조의 영향을 무력화시키거나 줄일 수 있나.
“신현실주의자들은 세계의 본질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켰다. 물론 구조가 중요하고 군사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외에도 중요한 것들이 있다. 신현실주의는 냉전의 종식과 같은 역사의 대변화를 잘 설명하지 못했다. 신현실주의는 유용하지만 설명의 일부만을 제공한다.”

-권력은 공유할 수 있는가. 미국은 동맹국들이나 중국과도 권력을 나눌 수 있나.
“절대적으로 그렇다. 권력이 한쪽은 이기고 다른 쪽은 지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권력에도 ‘포지티브섬 게임(positive-sum game)’이 있다. 바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선 다른 나라들과 협력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공유하는 상호의존(bigemonic interdependence)의 시대가 개막할 것인가.
“국제 금융의 안정과 기후변화 같은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이 협력하는 게 필수적이다. 단독 행동으로 성취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중국의 성장에 대해 과장하고 있다. 나는 최근에 출간한 권력의 미래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서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팩트와 통계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중국은 ‘한 자녀 정책’을 점진적으로 완화할 것이라고 본다. 인구학적 문제가 악화돼 경제성장을 둔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북한 같은 나라들에도 서구식 민주주의는 운명인가.
“매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대부분의 나라에 민주주의가 운명적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들을 보면 문화적 배경이 매우 다르다. 중국의 민주화도 한 세기가 걸리는 매우 느린 과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민주주의 또한 문화적 바탕의 변화에 달렸다.”
 
한국 민주화 경험은 소프트파워 원천
-한국에 무엇을 권하겠는가. 한국은 세계 정세의 작은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나라인지 모른다.
“한국은 ‘대단한 성공 스토리(a great success story)’이다.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주요 20개국(G20) 회의의 호스트가 됐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성공을 정치적 성공과 결합했다. 정치 권력이 선거 결과로 바뀌는 효과적인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것이다. 한국의 성공 스토리는 다른 나라들을 끌어당기는 능력을 주는 강한 소프트파워의 원천이다. 물론 한국은 매우 위협적일 수 있는 북한 정권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하드파워를 유지해야 한다. 한국의 군사력·경제력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옹호 전통도 다른 나라들을 끌어당기는 소프트파워다.”

-중국이 계속 성장하고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적대적이 된다면 한국은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일본 등 다른 민주국가들과 함께 미국 편을 들어야 하는가.
“한국은 미국 편이 돼야 얻을 것이 더 많다. 중국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거인이고 미국은 멀리 떨어져 있는 거인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그렇다. 멀리 떨어져 있는 거인이 바로 붙어 있는 거인보다 안전하다.”

-유럽에서 30년전쟁(1618~48)을 끝낸 베스트팔렌 조약(1648년) 이래 주권 국가들이 무력을 독점하는 국제사회가 유지됐다. 수십 년 내에 이를 탈피하는 포스트베스트팔렌(post-Westphalian) 국제체제가 도래할 가능성이 있나.
“베스트팔렌 체제는 이미 침식되고 있지만 포스트베스트팔렌 세계는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주권 국가가 글로벌 정치의 중심이다. 그러나 ‘비국가행위자(non-state actors)’의 역할이 증대하는 것은 이번 세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전환이다. 국제체제에서 비국가행위자가 민족국가를 대체하고 있지는 않지만 비국가행위자는 글로벌 정치의 무대를 훨씬 더 비좁게 만들고 있다. 이는 민족국가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테러집단 같은 비국가행위자가 국제평화와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라면 소프트파워·스마트파워보다는 ‘감시 파워(surveillance power)’가 가장 중요하지 않나.
“테러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예컨대 첩보 활동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알카에다 활동을 저지하는 데 감시·첩보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은 말이다. 하지만 다른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알카에다가 새로운 멤버를 모집하는 것을 막을 것인가’이다. 답은 소프트파워다. 알카에다가 새로운 단원을 충원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은 주류 이슬람 신자들의 가슴과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소프트파워가 없으면, 하드파워로 테러범들을 죽이면 죽일수록 더 많은 새로운 테러범들을 양산할 뿐이다. 주류 이슬람 신자들을 끌어당겨 테러 자원을 원천적으로 소진시키는 게 효과적인 대테러 전략이다.”

헌팅턴·키신저를 앞서는 영향력
조셉 나이 교수는 10개국 1700명의 국제정치학자를 대상으로 한 2008년 설문에서 미국 외교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학자로 선정됐다. 36%를 받아 새뮤얼 헌팅턴(35%)과 헨리 키신저(16%)를 앞선 것이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5월 23일 나이 교수가 최근 출간한 권력의 미래(The Future of Power)를 소개하며 “영국에는 왜 나이 교수 같은 인물이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소프트파워뿐만 아니라 ‘스마트파워(smart power)’도 오바마 행정부가 애용하는 외교·안보 용어다. 스마트파워는 군사력·경제력으로 구성된 ‘하드파워(hard power)’와 소프트파워를 승리를 위한 전략으로 결합하는 능력이다.

프린스턴대(학사)와 하버드대(박사)에서 공부한 나이 교수는 국방차관보, 국가정보위원회(NIC) 위원장,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원장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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