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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찡한 큰절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34호 10면

마음이 심란하거나 침묵이 그리울 때 숲길을 걸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내딛는 걸음만큼 생각이 사라지는 듯합니다. 오래된, 작은, 외진 절집에 가도 종교와 상관없이 그냥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가끔 가는 절집을 여럿이 모여 찾았습니다. 차는 절집 멀리 세우고 잡목과 편백나무 숲길을 걸었습니다. 해 뜨기 전이라 공기는 가라앉고 숲의 향은 깊었습니다. 여럿이 혹은 홀로 걸어도 숲길은 언제나 좋습니다. 가파른 절집 계단을 호흡 조절하며 올랐습니다. 마당을 거쳐 그리 크지 않은 대웅전에 들어가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숲길 걸으며 자리 잡던 마음이 절집 한구석에 앉으며 방점을 찍었습니다. 멍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시더니 향을 지피고 제 옆에서 큰절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흐트러짐 없이, 너무도 공손하게 몸을 낮추어 예를 다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찡하게 와 닿았습니다. 우리네 할머니들이 품고 있는 마음이 큰절을 통해 뿜어져 나옵니다. 마음이 출렁였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무엇 때문에 저리도 간절할까.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마음의 고요가 깨졌습니다. 그럼에도 고마운 할머니입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중정다원’을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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