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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사악해지지 말자, 구글은 왜 이런 표어를 내걸었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그래픽=신재민 기자]

생각조종자들
엘리 프레이저 지음
이현숙 외 옮김, 알키
356쪽, 1만5000원

#장면 1.

 9·11 테러 직후 미국 정부는 비행기 납치범 명단을 공개하고 관련 제보를 애타게 구했다. 이 때 정보제공 서비스 업체인 ‘액시엄’이 구세주로 나섰다. 액시엄은 납치범 19명 중 11명에 대해 미국 정보기관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액시엄이 미국인 96%를 포함, 전 세계 5억 명에 대한 엄청난 개인정보를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족 이름, 주소, 신용카드 사용내역은 물론 애완동물 종류와 복용 중인 약 등 대략 1500가지에 이르는 데이터 베이스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면 2.

 2010년 멕시코만 원유 누출 사고 때 미국 동북부 출신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백인여성 두 명이 구글에서 영국의 석유 시추사 BP에 대한 뉴스 검색을 했다. 한 사람에게는 사고 뉴스와 그 관련 링크가 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홍보 광고가 가득한 BP 투자 정보가 나왔다. 두 사람 모두 약간 좌파 성향으로 비슷했는데 검색 결과는 딴판이었다.

 두 사례는 동전의 양면이다. 인터넷 사용이 갈수록 확대되면서 방대한 개인정보가 특정업체, 또는 특정인에 집중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이를 토대로 개인별 맞춤 정보제공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책은 이 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인터넷 복음주의에 대해 주목할 만한 도발적 주장을 전개한다. 지은이가 2008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온라인 정치시민단체 ‘무브온’의 이사장이자 프로그래머이기도 하기에 책에 담긴 메시지는 묵직하게 읽힌다.

 그는 인기 웹사이트의 설립자부터 정보전문가까지 두루 만난 사실을 정리해 누군가가 인터넷을 통해 우리가 보는 ‘사실’을 걸러내 우리의 사고를 틀 지우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한마디로 그의 주장은 ‘당신의 머릿속을 믿지 마라’ ‘인터넷이 민주주의의 장밋빛 미래만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로 요약된다.

 월 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CNN이나 야후·MSN 등 상위 50곳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평균 64개의 쿠키와 개인정보 추적용 유도장치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개인의 은밀한 사항들을 파악하고 축적하며 이를 현금화한다. 예를 들어 운동화를 사려고 온라인 사이트를 방문했다가 사지 않았더라도 기록이 남는다. 이는 ‘리타깃팅’이란 기술을 사용해 당신이 로그인 한 게임 사이트와 블로그에 운동화 광고를 올릴 수 있다. 결국 운동화를 사면 나중엔 “땀을 기막히게 흡수”하는 기능성 양말광고가 당신이 가는 인터넷 사이트 곳곳에 따라붙게 된다. 이를 가능하게 지능형 검색엔진은 나아가 맞춤형 뉴스도 제공할 수 있다. 컴퓨터를 켜면 다양한 매체에서 당신이 선호하는 뉴스를 골라 우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데 지은이는 이것이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본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구성원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 공통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소식만 본다면, 그래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노숙자 관련 뉴스보다 아이돌의 이혼이나 골프대회 결과 등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사회 이슈에 대한 건강한 토론이 이뤄질 수 없다는 논거에서다. 독자의 수요에 맞춘 콘텐트 생산이 보기엔 멋지지만 트래픽에 매몰되면 ‘말과 섹스를 한 후 죽은 남자’에 대한 기사가 몇 주 동안 시애틀 타임스의 인기 기사 순위에 오르는 사태와 같은 것이 벌어진다.

 미국 MIT의 미디어 학자인 니콜러스 네그로폰테는 이를 두고 “정확하게 당신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전해준다는 ‘아첨꾼 개별화’와 ‘당신이 듣고 싶든 말든 알아야 하는 것을 당신에게 전해준다는 ‘권위적 접근’이 있다. 우리는 지금 아첨꾼 쪽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은 과거 언론보다 민주주의를 위해 잠재적으로 더 나은 매체지만 ‘모두가 언론을 소유한 시대’는 ‘심하게 걸러진 편협한 세상보기’와 맥이 닿아 있으며 이는 새로운 형태의 권력 집중과 공공의 문제가 외면되고 감정적 이슈에 열광하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론조작도 가능하다.

 이것만이 아니다. 지나친 개별화는 자기 생각만 강화해주는 ‘정보 편식’으로 다른 생각, 다른 문화를 통찰하면서 새롭게 배울 기회를 봉쇄해 창의성을 저해한다. 지은이는 ‘필터 버블’의 세상과 관련해 세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걸러지지 않은 정보가 다수의 대중에게 동시에 제공되는 일이 없어지는 탓에 벌어지는 ‘외톨이 현상’, 구글과 페이스북 등이 제공하는 ‘맞춤’의 기준을 알 수 없어 생기는 ‘오리무중 헤매기 현상’, 필터 버블에 들어갈지 여부를 선택할 결정권이 없는 데서 비롯된 ‘떠밀리기 현상’이 그것이다.

 문제는 뾰족한 해법도 마땅치 않고, 이를 되돌릴 수도 없다는 점이다. 개인 차원의 처방이래야 새로운 관심사를 가져라, 쿠키를 삭제하라 정도고 기업의 자율에 많은 것을 의지한다. 이를 의식한 듯 구글의 표어는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이라고 한다. 하지만 구글의 검색 엔지니어는 “우리는 정말로 나쁜 짓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죠. 그러나 우리가 원한다면 언제든 할 수 있겠죠”라고 털어놨다.

 책은 흥미롭다. 현장 이야기가 많아서다. 정치와 마케팅, 언론에 대한 통찰력도 있다. 그리고 프로그래밍을 주로 다룬 6장 ‘기술은 세상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를 제외하면 쉽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는 이들에게는 필독서라 할 수 있다.

김성희(북 칼럼니스트)

신조어로 본 인터넷 검색시대

◆최소 불유쾌 이론=텔레비전 시청자들은 특별한 프로그램을 고집하지 않으며 너무 불유쾌하지 않은 방송이면 그대로 채널을 고정한다는 것으로 1970년 폴 클라인이 주창했다. 맞춤형 뉴스의 영향력이 커질 우려에 대한 논거로 제시됐다.

◆점화 효과(priming effect)=시 간적으로 먼저 제시된 자극이 나중에 제시된 자극의 처리에 영향을 주는 촉진현상을 일컫는 인지심리학 용어. 이를 테면 뉴스 방송순서에 따라 시청자들은 중요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데이터 마이닝=수많은 데이터간의 유용한 상관관계를 찾아내 미래에 예측 가능한 정보를 추출해 이를 의사결정에 이용하는 기술.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본 콜렉터』의 저자 제프리 디버는 이를 악용하는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는 추리소설 『브로큰 윈도』를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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