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성전환 38세 아빠, 엄마 되려 했지만 …

중앙일보

입력

대법원이 성(性)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이 법적으로 성별을 바꾸는 것에 대한 허용 기준을 제시했다.

성별 정정으로 인해 우리 민법이 허용하지 않는 동성 결혼이 사실상 가능해지는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현재 혼인 상태가 아니고 ▶미성년 자녀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2일 성전환자 장모(38)씨가 “가족관계등록부에 남성으로 기재된 성별을 여성으로 정정해 달라”며 낸 신청을 기각한 원심 결정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장씨는 이혼을 했지만 16세 아들이 있기 때문에 자녀와의 신분관계에 중대한 변경을 초래하거나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커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장씨는 2남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부모의 권유로 19세의 어린 나이에 결혼해 아들도 낳았다. 그러나 결혼 4년 만에 이혼했다. 성정체성 때문에 고민한 것이다. 장씨는 32세가 되던 2005년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현재 그는 여성 호르몬제를 맞고 있다. 장씨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된 지 3년 후인 2008년 12월 울산지법에 가족등록부 정정 신청을 냈다. 그러나 1, 2심은 “혼인을 한 적이 있고 미성년자인 아들을 뒀기 때문에 법적으로 성별을 정정하면 신분관계에 중대한 변동을 초래할 수 있다”며 기각했다.

 이 사건을 놓고 대법관 13명은 8대 5로 ‘성별 정정 불가’ 의견을 냈다. 이용훈 대법원장 등 8명은 “현재 혼인 중에 있는 성전환자에게 성별 정정을 허용하면 법이 허용하지 않는 동성혼을 결과적으로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거에 혼인한 사실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이런 혼란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불허 사유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어 “미성년자인 자녀가 있는데도 성별 정정을 허용하면 아버지가 여성으로, 어머니가 남성으로 뒤바뀌는 상황에서 자녀가 정신적 혼란과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 대법원장 등은 “동성 결혼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은 찬반 양론을 떠나 엄연한 현실인데 미성년자를 무방비하게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고 말했다.

 양창수·이인복 대법관은 “미성년 자녀의 존재 여부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것은 성전환자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시환·김지형·전수안 대법관은 “다수 의견은 사회구성원 다수가 수용할 만한 경우에만 성별 정정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라며 “성전환 후의 정체성으로 이미 가족관계가 형성됐을 수도 있고 혼인 상태지만 별거나 이혼 소송 중일 수도 있다”고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구희령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