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 대추락 2조 달러가 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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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미국 증시에 또 하나의 기록이 수립됐다. 그러나 이번 기록은 그동안 미국 투자자들이 보아오던 것과는 달랐다. 상승을 거듭하던 나스닥 시장이 무려 25.3%나 급락한 것이다. 미국의 종합 주가지수 사상 한 주간 최대의 낙폭이었다.

전설적인 1929년의 검은 금요일 주간보다 컸고 다우지수가 하룻만에 22.6%나 떨어진 1987년의 대폭락이 있던 주보다도 컸다. 특히 한 주의 장을 마감하는 지난주 금요일에는 무려 1조 달러가 주식시장에서 증발했다.

윌셔 어소시에이츠社에 따르면 화폐가 등장한 이후 하루 최대의 손실액이었다. 그것을 포함한 지난 한 주간의 총 손실액은 2조1천억 달러에 달했다. 광란의 금요일에는 나스닥·다우지수·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500 지수(S&P 500)
모두 하루 최대 포인트 하락을 기록하며 투자자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금요일 장 마감 시점에서 나스닥 지수가 다소 손실을 만회했고 이번주에 반등할 수도 있지만 지난주에는 공황 분위기가 역력했다. 뮤추얼 펀드들은 주식을 무더기로 투매했다. 증권사들은 신용투자에 대한 추가담보 요구에 응하지 못하는 고객들의 주식을 내다팔았다.

누가 ‘대폭락’은 없다고 그랬던가. 누가 세상을 뒤바꾸고 있는 첨단기술 회사들의 주식을 살 때는 주가가 문제되지 않는다고 큰소리쳤던가. 이번 투매사태를 관심있게 지켜본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회사 주식이라도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매입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아이디어만 거창할 뿐 실속은 전혀 없는 회사 주식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신경제’와 조금이라도 관계된 것은 무엇이든지 좋은 투자고 ‘구경제’ 기업은 모두 망조가 들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신경제’ 기업 중 다수가 수익 전망이 전혀 없는 반면 자동차·철강·화학 등 구경제 기업의 태반이 급속도로 인터넷 사업에 진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주 나스닥이 연일 하락한 점과 수요일에는 하락세가 다우 지수로 확산된 점을 감안하면 최근 월스트리트에서 ‘주가’가 오르고 있는 상품은 쓸데없는 말들 뿐이다. 아마 지금쯤 뉴스·논평, 그리고 속쓰림을 유발하는 온갖 잡설이 난무할 것이다.

그저 쓰린 위를 꼭 틀어쥐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사람들은 과거의 유례를 들먹이며 지금이 매수나 매도, 또는 관망해야 할 때라고 계속 떠들어댄다. 그러나 개인 투자자가 매도해야 하느냐, 관망해야 하느냐, 매수하느냐에 대해서는 아무도 속 쉬원히 답해줄 수 없다.

아무도 답을 모르는 또 한 가지 의문은 ‘이제 활황은 끝났는가’라는 것이다. 주식시장은 지난 5년간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돈을 벌어다주면서 경제의 ‘마약’이 됐다. 주식시장에서 수조 달러의 부가 창출되면서 소비자·기업 지출이 증가했고 불로소득세 수입 증가로 연방예산(그리고 다수의 州 예산)
이 흑자로 돌아섰으며 미국 인터넷망 구축비용의 상당 부분을 부담했다.

지금 많은 기업들이 두툼한 월급봉투 대신 스톡 옵션을 제공하면서 증시를 통해 인건비 부담을 덜고 있다. 만일 주가가 하락해 가령 1년 정도 그대로 침체될 경우 미국이 고주가 중독에서 빠져 나오기란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끊는 것만큼 어려울 것이다.

모든 것을 예상보다 좋게 만든 주가상승의 선순환이 모든 것을 예상보다 나쁘게 만드는 주가하락의 악순환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지난 3일 마이크로소프트社의 독점을 인정한 토머스 펜필드 잭슨 판사의 판결을 이번 폭락사태의 시발점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주가는 즉시 15% 이상 하락, 시가총액을 약 8백억 달러나 깎아먹으면서 나스닥 붕괴에 불을 댕겼다.

마이크로소프트 주가가 하락하면서 경쟁사들의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하락세는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시장에 확산돼 모든 첨단기술주를 감염시켰다. 첨단기술주에 의해 좌우되는 나스닥은 가장 큰 폭의 하락을 기록했다.

충분히 알려진 사건에 대해 시장이 그처럼 비이성적인 듯한 반응을 보인 것은 시장 분위기가 얼마나 불안했는지, 그리고 불안한지 말해준다.

나스닥이 지난해 무려 86%나 상승한 뒤 올들어 지난 3월10일까지 또 다시 24% 상승하는 동안에는 모든 것이 호재로 작용했다. 외계인들이 레이저 광선으로 실리콘 밸리를 파괴했다고 해도 나스닥은 재건 호경기 전망으로 상승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분위기가 바뀌었다. 기대에 못미치는 수익 증가, 뮤추얼 펀드 매니저 마크 모비우스의 비관적 장세 전망,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인플레 보고서,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의 통상적인 모호한 발언 등 모든 것이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언젠가, 아니 어쩌면 이번주에라도 모든 것이 다시 호재가 될지도 모른다. 시장은 극단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특히 나스닥 같은 시장이 그렇다. 투자자가 저울질할 만한 이익이나 자산이 거의 또는 전혀 없기 때문에 주로 희망·포부·과대선전·추세를 근거로 거래되는 인기 주식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시장은 조그만 호재에 과대 상승하고 조그만 악재에도 과대 하락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리노 침체’(反독점 소송을 제기한 재닛 리노 美 법무장관을 가리키는 말)
나 ‘클라인 조정’(反독점 담당 美 법무차관보 조엘 클라인을 가리킴)
같은 용어가 일반화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 소송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스스로 갈 길을 가는 데 대한 구실에 불과하다. 나스닥이 그렇게 빨리 큰 폭으로 하락했다는 사실은 시장이 얼마나 취약했는지 말해준다. 마이크로소프트 뉴스가 악재로 떠오르지 않았다면 다른 악재가 출현했을 것이다.

나스닥의 손실(지난 3월 10일의 최고점 이후 시가총액 2조3천억 달러, 다시 말해 34% 하락)
에 대한 한탄과 통곡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지난주 나스닥의 폭락이 세상의 종말은 아니다.

지난해의 상승세가 그 좋은 예다. 나스닥의 지난주 금요일 주가는 지난해 추수감사절(11월 25일)
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S&P 500은 3월 10일 수준에 비해 하락폭이 4%에도 못미쳤고 다우지수는 4% 가량 올랐다. 그리고 나스닥 시장에서 거액이 증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1998년 연말 종가에 비하면 50%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그러나 분위기는 심상찮다. VA 리눅스 시스템스·인터넷 캐피털 그룹·인포시스·레드 햇 등 많은 인터넷 기업의 주식들이 최고가에서 70∼80%나 하락했고 앞으로 더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사상 최고로 인기있는 신주공모 가운데 하나였던 팜社의 주가는 공모 첫날의 최고가 대비 80%나 하락했다. 재무상태와 수익성이 좋은 알짜배기 신경제 기업의 주식도 과대평가됐을 수 있다.

한때 잠깐이나마 자산가치가 세계 최고에 달했던 시스코 시스템스가 좋은 예다. 시스코는 인터넷 관련 하드웨어를 판매해 수천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그런 시스코 주식도 지난주 24%나 하락했다. 그러나 아직도 주가가 낮다고 볼 수 없다. [뉴스위크=Allan Sloan 월스트리트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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