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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틱 록' 환상의 선율〈발렌시아〉

중앙일보

입력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는 그 동안 아티스트 부재로 허덕이던 Rock계에 장래가 촉망되는 신인들이 대거 등장했던 시기였다. 그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아티스트는 Queen의 Music Video 'Bohemian Rhapsody'를 보며 자라난 신세대인 Robby Valentine과 본 음반의 주인공 Valensia다.

두 사람 모두 네덜란드 출신이며, Queen에 강한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름까지(Valen...까지)도 닮았다. 물론 1978년 〈School of Time〉이라는 음반을 발표했던 프랑스 그룹 Madrigal부터 1990년대 그룹 Mozart에 이르기까지, Freddie Mercury의 창법과 Queen의 사운드를 흉내내었던 그룹들은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Valentine과 Valensia는 모방과 흉내에 그치지 않고, Queen의 사운드를 무한대로 확장시킨 아티스트들로 높게 평가 받을 만하다.

먼저 1980년대 말부터 팝 계에 입문, ZINATRTA라는 네덜란드 그룹의 키보드 주자로 활약했던 Robby Valentine은 1990년대 초 솔로 아티스트로 데뷔하면서 뛰어난 연주와 보컬 그리고 최첨단 녹음 기술을 무기로 '제 2의 Queen' 'Solo Queen'의 신화를 창조해 냈다.

하지만 그 보다 3살 연하인 본 음반의 주인공 Valensia는 막 발굴된,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는 다이아몬드 원석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가 데뷔 음반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으며, 우리가 이 작품을 접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Valensia가 직접 이야기하고 있는 그의 음악적 배경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인도네시아인 아버지와 스페인계 네덜란드인 어머니를 둔 Valensia는 인종의 집합 장소와 같은 네덜란드 The Hague에서 1971년 4월 13일 태어났다(그의 생일은 본 작의 첫 곡 'Tere'에서도 잠시 언급된다). 즉, 그의 몸 속에는 아시아인의 피가 반이나 흐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음반에 담겨 있는 그의 사진들을 보면, 동양적인 이미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의 조부모는 스페인 Valencia 지방에 살고 있었고, 그는 유아시절을 네덜란드와 스페인을 오가며 보냈다. 'Valensia'라는 활동명도 그의 Middle Name에서 온 것이다. Valensia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 누구나 이 이름은 가명일 것이라고 추측했을 것이다. 그의 실제 이름은 Aldous Byron Valencia Clarkson으로, 지명인 Valencia를 영어식으로 Valensia로 바꾸어 짧게 사용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피아노와 기타를 배웠고, 아홉 살 때 이미 자신의 만든 곡으로 스페인 음반회사로부터 계약 제의를 받았지만, 그의 부모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음악의 길을 포기하고 평범한 삶을 강요 받았다. 부모 입장에서는 어린 나이에, 험난한 음악인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매우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Valensia는 학창시절,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험난한 음악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중학교 시절부터 그는 공부를 등한시하고, 교내 그룹을 결성, 데모 테이프를 녹음하는 데에만 열중했다. 당시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그룹은 Queen과 후반기 Beatles 그리고 Kate Bush등이었지만, 곧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찾게 되면서, 뮤지션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데모 테이프를 각 음반사에 보내게 되는데…이러한 노력은 제작자이자 엔지니어인 John Sonneveld의 지대한 관심을 끌게 되면서 결실을 맺게 된다.

1992년 말 Valensia는 네덜란드 Mercury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데모 테이프에 담겨있던 'Gaia'라는 곡으로 데뷔하게 되는데, 6분에 달하는 긴 곡이 싱글로 발표된다는 것은 음반회사로서는 커다란 모험이었다. 그러나 이 싱글은 1993년 가을에 발매되자마자 커다란 성공을 거둔다. 네덜란드의 모든 FM 방송국들이 앞을 다투어 이 곡을 방송했으며, 이 싱글은 곧 네덜란드 차트 1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1993년 말, 본 작인 데뷔 음반이 발표되었다.

이 음반에는 Valensia가 십대 시절부터 22세까지 만들어왔던 5년간의 작품들이 담겨져 있는데,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경이적인 1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한다. Valensia 스타일을 선호하는 일본 음반시장이 이러한 판매고에 크게 기여했다. 일본에서의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같은 해인 1994년 5 곡이 담긴 미니 음반인〈White Album〉이 일본에서만 발매된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 두 번째 음반 〈Kosmos〉가 발매되는데, 유럽에서는 'Valensia II'라는 부제목으로 소개되었다. 1997년에는 부친의 모국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베스트 음반 〈The Very Best of Valensia"가 발매되었다. 그리고 1998년에는 기존 Valensia 팬들에게 큰 실망을 주었던 3번째 음반 〈Valensia '98〉이 일본에서만 발매되었다. 문제의 3번째 음반은 음반사 측의 강요에 의해 음악방향을 180도 전환했던 실패작으로 기록된다. 본국인 네덜란드에서는 소속 음반사 간부의 한마디로 발매가 중지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1999년에는 Robby Valentine과 듀오로 〈V〉라는 음반을 발표했다.

몇 해 전 한 일본 친구가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뮤지션'이라며 막 발매된 Valensia의 본 작을 보내주었다. 나는 음반 커버를 보고 이태리 뮤지션 Sanguiliano를 떠올렸는데 CD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리듬과 멜로디는 통쾌한 Queen풍의 사운드였다. 한마디로 맑고 웅장한 소리들의 결정체였다.

이 음반을 들으면서 나는 국내에서 LP로 소량 발매된 후 사라져버린 Robby Valentine의 작품을 희미하게 기억해 냈다. 그리고 본 작에서 게스트로 참가하고 있는 Robby Valentine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본 작에서 처음으로 흥미를 끌었던 곡들은 Queen 스타일의 첫 곡 'Tere'와 이국적인 터키 풍의 'Scaraboushka', 웅장한 'Gaia'였다.

첫 곡 'Tere'를 들었을 때 왜 Queen의 'Bicycle Race'를 떠올렸을까? 중·후반부에 잠시 흐르는 이슬람 풍의 멜로디는 나를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한다. 이 곡의 주인공인 'Tere'는 과연 누구일까? 주인공 Valensia가 접근하려고 하면 멀리 사라져 버리는 신비의 여인? Valensia가 태어난 날 은해(Silversea)에 빠져 죽었다는 Tere. Devil Doll의 Mr.Doctor가 태어난 날 그의 친형이 사
망했다더니, 이번엔 Valensia가 나를 혼돈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구나. Tere…가사를 음미할 때마다 점점 신비스러워지는 이름이다.

하지만 세 번째 곡 Scaraboushka에서 그녀가 존재하지 않았던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Tere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고, Colinda는 뭔가 새로운 여인, Debby는 여동생 같고 따라서 나는 Luciella와 결혼하길 원한다는 내용이 Kate Bush에 영향을 받은 터키 풍의 Scaraboushka에 등장한다.

네 번째 곡에서는 이태리 그룹 Hunka Munka의 Roberto Carlotto를 연상시키는 여성스러운 보컬이 흘러나온다. 이러한 여성스러움이 〈Valensia '98〉의 네덜란드 발매를 좌절시켰다.

여섯 번째 곡에서 Swan Lake가 흐르는 듯 싶더니 어느덧 슬픈 '범 고래소리'가 메아리친다. 바로, 본 음반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11번째 곡,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Gaia'를 제목으로 내건 작품이다. 이 곡의 제목 'Gaia'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상징한다. '환경보호' '동물보호'에 늘 상 등장하는 범 고래의 울음(?)은 이 곡이 심상치 않음을 예고한다. 이러한 곡들은 그가 스페인 해변을 거닐면서 오랫동안 상상하고, 꿈꾸고, 창조한 곡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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