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황당한 비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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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여대생 성희롱’ 강용석 의원에 대한 제명안이 지난달 31일 국회 무기명 표결에서 부결됐다. 통과에 필요한 재적 3분의 2(198명)에 훨씬 미달하는 111명만이 찬성한 것이다. 앞서 국회 윤리특위는 지난 5월 만장일치로 제명안을 의결했었다. 본회의 판단이 특위와 같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표결의 괴리(乖離)는 다수 의원의 윤리의식이 특위가 실천한 윤리규정에 미치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의원들이 표결에서 판단 기준으로 삼은 것은 ‘강 의원의 잘못이 그를 제명할 만큼 심각한 것이냐’였던 것 같다. 게다가 강 의원이 이미 많은 대가를 치렀는데 ‘그 정도 일로’ 의원직을 빼앗을 필요까지 있느냐는 생각을 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에게 필요한 엄정한 윤리의식과 의원 신분을 집단으로 보호하기 위한 관대함 사이에서 많은 이가 후자(後者)를 선택한 것이다.

 의원들의 느슨한 문책(問責)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국회의장을 역임한 김형오 한나라당 의원의 표결 전 발언이다. 그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 뒤 “여러분은 강 의원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 나는 그럴 수 없다”며 제명 반대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이 인용한 성경 구절은 유명한 것이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들킨 여인을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끌고 오자 예수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인간은 모두 죄를 가지고 있으니 타인을 단죄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에 관한 종교적 메시지이지 ‘모두 흠이 있으니 모두가 그냥 넘어가자’는 뜻은 아니다.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며 의원은 선량(選良)이니만큼 윤리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비윤리적 행동을 보호하기 위해 신성한 종교적 메시지를 견강부회해서는 안 된다. 의원들의 윤리기준을 강화하는 데 앞장서야 할 전직 국회의장이 아무 거리낌 없이 황당한 비유나 하고, 이런 비유에 “잘했어”라고 동조하는 일부 의원들, 우리 국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