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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일 낼 줄 알았지” 프로들도 박수 쳐준 첫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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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저 선수 누구야.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다 이제야 나타난 거야.”

지난달 28일 경기도 용인 아시아나 골프장에서 끝난 제54회 대신증권 KPGA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 챔피언 조를 따라다니던 갤러리 사이에선 이런 소리가 터져나왔다. 갤러리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선수는 프로 2년차 김병준(29). 김병준은 KPGA챔피언십이 열린 나흘 내내 선두를 달린 끝에 합계 15언더파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2위 윤정호(토마토저축은행)를 3타 차로 따돌린 완벽한 우승이었다.

김병준(가운데)이 대신증권 KPGA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확정 지은 뒤 환호하고 있다. 오른쪽은 우승 트로피를 치켜든 김병준. [KPGA 제공]

김병준은 이번 대회 내내 호쾌한 샷으로 다른 선수들을 압도했다. 드라이브샷은 300야드를 넘나들었고, 퍼팅도 쏙쏙 홀로 빨려 들었다. 무명 선수라곤 믿기지 않는 빼어난 기량이었다. 다른 선수들도 일을 낼 줄 알았다며 김병준의 우승을 축하해줬다.

고교 1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다는 김병준은 28세인 지난해 KPGA투어에 데뷔했다. 그렇지만 그동안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던 철저한 무명 선수였다. 지난 7월 조니워커 클래식에서 공동 8위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우승은커녕 톱10에도 들기 힘들었다. 올해 초엔 4개 대회 연속 컷 탈락을 했다. 지난해엔 무려 8차례나 예선 탈락했다. 그랬던 그가 최고 권위의 메이저 대회에서 덜컥 우승을 해버린 것이다.

“연습할 때마다 ‘도대체 네 실력으로 우승 못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대회에만 나가면 나가 떨어지기 일쑤였지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연습 라운드 할 때 그렇게 잘 맞던 공이 시합 때만 되면 안 맞곤 했으니까요. 아마 자신감이 없었던 탓이겠죠.”

김병준은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육상선수였다. 어렸을 때는 축구와 단거리 육상선수를 하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주변의 권유로 멀리뛰기 선수로 나섰다. 훈련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도 경북 포항시에 열린 지역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그러다 고교 1학년 때 처음으로 골프 클럽을 잡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멀리뛰기 선수로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뒤늦게 골프를 시작했지요. 골프는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공을 쳐보니 재미를 느끼게 됐어요.”

김병준은 골프를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청운의 뜻을 품고 호주로 떠났다. 유명 프로에게 골프를 배운 건 아니었지만 호주에서 샷을 갈고 닦으며 프로골퍼의 꿈을 다졌다. 2년여 만에 고국에 돌아온 그는 프로골퍼를 꿈꾸다 해병대에 자원 입대한다. 해병대 943기로 백령도에서 근무했다.

“홍순상 프로가 저보다 한 기수 아래일 겁니다. 당시 해병대에 공 잘 치는 KPGA프로가 입대했다고 떠들썩했지요. 저는 당시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프로 지망생에 불과했지요.”

어린 시절 육상선수로 활동했던 덕분인지 김병준은 하체가 탄탄하다. 허리 둘레 사이즈가 31인치인데 정작 허벅지가 맞는 옷이 없어 바지를 맞춰 입는 형편이란다. 드라이브샷 거리는 평균 300야드. 마음먹고 때리면 340야드도 너끈하다. 김병준은 공을 세게 때리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헤드 무게를 느끼면서 임팩트에 신경을 쓰는 편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가장 자신 있는 샷으로 드라이브샷을 꼽는다.

“이제까지 골프용품 업체에서 이렇다 할 후원을 받은 적이 없어요. 한 의류업체에 골프 할 때 입을 옷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을 당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옷도 제가 사 입고 대회에 나가곤 했습니다. 우승했으니 이제 좀 달라질까요.”

김병준은 대신증권 K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상금 1억원을 받았다. 이제까지 벌었던 상금 1046만원의 열 배에 가까운 돈을 한꺼번에 챙긴 것이다.

“우승하면 집사람에게 차를 한 대 사주기로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일단 돈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그가 좋아하는 선수는 스웨덴의 헨릭 스텐손. 스윙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서란다. 국내 선수 중에는 황인춘·남영우를 꼽았다. 우승한 지 이틀 만인 30일 김병준과 통화를 했다.

“우승한 뒤 전화통에 불이 날 지경입니다. 수백 통의 축하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네요. 이제야 우승했다는 실감이 나네요.”

포항 사나이 김병준은 “자만하면 안 되지만 자신감은 무척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며 껄껄 웃었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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