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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한국서는 시들, 일본서는 열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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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의 한식당에서 일본 여성들이 막걸리로 건배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8월 25일 저녁 이마트 천호점의 주류 코너 앞. 유럽의 수입맥주를 저렴하게 파는 행사 매대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바로 옆 수십 종의 지역 막걸리가 진열된 막걸리 코너는 한산한 모습이다. 수입맥주를 고르던 직장인 이상윤(33)씨는 “지난해에는 여러 종류의 막걸리를 사서 마시곤 했는데 요즘은 맛이 다양한 수입맥주를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막걸리 진열대 규모는 지난해보다 커졌는데 판매율은 비슷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막걸리 시장 성장세 정체…진로·롯데는 한류 타고 일본 시장 적극 공략

#막걸리 유통업자인 이모 사장은 8월 초 수출 협의를 위해 일본 도쿄를 찾았다가 생각보다 뜨거운 현지의 한식 열풍에 놀랐다. 도쿄 번화가인 신주쿠 거리에 한식당 간판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서다. 사업차 만난 현지인은 “지난해 여성들이 연말 모임에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으로 김치찌개가 꼽혔다”며 “한식당이 늘면서 소주보다 순한 막걸리가 잘 팔린다”고 전했다.

지난 몇 년 사이 주류업계에 돌풍을 일으킨 막걸리가 한국과 일본에서 엇갈린 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급격히 커진 국내 막걸리 시장은 올 들어 성장세가 둔화되는 모습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품목별 광공업 생산량’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상반기 탁주 생산량은 8만6884kL, 2010년 같은 기간 생산된 양은 17만9786kL였다. 올 들어선 달랐다. 같은 기간 동안 생산량은 19만1053kL에 그쳤다. 지난해보다 약간 늘어난 수치다. 유통업계에서도 막걸리는 상대적으로 약세였다. 이마트의 주류 판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산 맥주의 올 상반기 매출은 7.2% 늘었다. 막걸리 매출은 1.5% 증가했다. 한 막걸리 유통업자는 “여름 내내 비가 많이 와서 판매량이 조금 늘었지만 봄에는 지난해만큼 팔리지 않아 긴장했다”고 말했다.

막걸리가 예전보다는 입지가 나아졌지만 소주·맥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술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국내 소비자의 성향, 보관과 유통이 어려운 생막걸리의 특성 등이 성장의 걸림돌이다. 류인수 가양주협회 회장은 “막걸리는 다양한 맛을 내기 어려운 술이라 마시는 사람이 금세 식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맥주 매출 증가량에 훨씬 못 미쳐
시장 상황도 독점체제라 많은 기업이 뛰어들기 어렵다. 막걸리의 인기가 치솟았던 지난해 크고 작은 주류업체가 앞다퉈 막걸리 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나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전국 시장점유율을 살펴보면 장수막걸리를 만드는 서울탁주가 50%, 국순당이 20%로 이들 두 업체가 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강력한 유통망을 갖춘 두 업체의 기세에 눌려 다른 업체는 발을 디딜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지방의 일부 유명 양조장이 전통주 생산업체에 대한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감행했지만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진 못했다.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막걸리 양조장을 갖춘 업체는 전국에 800여 개다. 이 가운데 절반이 연매출로 1억원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류인수 회장은 “지방에 뿌리 내린 양조장은 지역의 유통망을 근간으로 명맥을 이어왔는데,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며 대기업 제품이 지방까지 내려와 경영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체 막걸리 시장은 커졌지만 기존 독점업체의 매출만 늘었을 뿐 중소업체는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뒤늦게 주류업계 대기업들은 막걸리 열풍이 상륙한 일본 열도를 노리고 있다. 정부 규제로 국내에서는 막걸리를 팔기 어렵고, 억지로 제품을 내놔봤자 여론이 나빠질 우려도 있어서다. 국내 시장에서 소주를 판매하는 대표적 주류기업인 진로와 롯데주류는 막걸리 생산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 유통 대행 사업에 나섰다. 국내 막걸리 생산업체와 손잡고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제품을 받아 일본을 비롯한 해외 시장을 노리는 것이다.

지난해 3월 일본 시장에 막걸리를 내놓은 진로는 포천에 있는 상신주가에서 생산된 막걸리에 ‘진로막걸리’라는 상표를 부착해 일본에서 판매한다. 진로재팬이 소주를 수출하며 다진 유통망을 타고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수출 첫해 70만 상자를 판매했는데 올해에는 상반기에만 83만 상자를 팔았다. 진로막걸리 상품개발부 관계자는 “최근 설악양조를 인수해 수출 물량을 늘릴 계획”이라며 “소주 덕분에 진로 브랜드가 일본 소비자에게 친숙했던 덕을 봤다”고 말했다.

진로보다 1년 늦게 일본에 막걸리를 출시한 롯데주류는 국내 최대 막걸리 업체인 서울탁주, 일본의 주류 유통망을 가진 산토리와 협력해 서울막걸리를 수출하고 있다. 생산과 수출, 유통을 분담했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배우 장근석을 광고모델로 기용해 여성 고객의 눈길을 끌었다”며 “35만 상자였던 올해 판매 목표를 출시 두 달 만에 100만 상자로 상향 조정했는데 지금 추세대로라면 무난하게 달성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 말고도 전주 지역의 막걸리 업체와 공급 계약을 맺은 CJ제일제당, 계열사를 통해 참살이탁주를 인수한 오리온 등 대기업이 속속 일본에 상륙했다.

일본에서는 도쿄뿐만 아니라 지방 편의점에서도 막걸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됐다. 한식당은 물론 일본식 주점에서도 막걸리를 판다. 한류 콘텐트 기업을 운영하는 박광수 대표는 “한국 드라마에서 막걸리를 항아리에 담아 마시는 것을 본 일본인들이 매우 흥미를 느끼더라”며 “한국 드라마와 아이돌이 일으킨 한류 덕을 막걸리가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수 낮고 달콤해 일본인 입맛 맞아
막걸리의 도수가 낮고 달콤한 것도 인기 비결이다. 일본인들은 도수가 낮은 술을 좋아한다. 주류시장의 65%를 맥주가 차지할 정도다.

한국 주류업체는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단맛을 더 가미한 막걸리를 출시했다.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가 낮고 유산균이 풍부해 건강에 좋다는 이미지를 쌓아 여성층에서 먼저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중년 남성을 비롯해 더욱 폭넓은 연령대의 사람이 즐기고 있는 추세다. 롯데주류와 진로는 일본 막걸리 시장이 이제 출발 단계에 들어섰다고 본다. 앞으로 매출이 더 확대될 것을 기대하며 마케팅과 상품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성장세가 꺾인 국내 막걸리 시장, 이제 막 커지는 일본 막걸리 시장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특히 국내 시장의 성장세가 주춤한 데다 그마저도 서울탁주와 국순당에 밀려 힘을 못 쓰는 중소 막걸리 업계의 위기감은 더하다. 이들은 “수출 호조로 탄력을 받은 대기업이 앞으로 국내 시장까지 잠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주류업계에서는 “중소 막걸리 업체가 지난해와 같은 막걸리 열풍을 이어갈 새로운 제품과 마케팅 아이디어를 찾는 노력이 절실한 때”라고 입을 모은다.

박미소 기자 smile8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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