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금요일 새벽 4시] “첩보는커녕 구보나 하겠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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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면

◆프레드릭 포사이스와의 인터뷰 준비는 마치 첩보전을 벌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 어르신의 ‘실체’를 알기 위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포사이스 관련 정보를 수집해야 했거든요. 영국 신문, 미국 TV, 체코 라디오…. 처음엔 버겁기만 했는데 어느새 그의 인생 스토리에 홀딱 빠져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기사를 쓰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프랑스 극우단체, 베네수엘라 출신 국제 테러리스트, 아프리카 내전 등 워낙 소재가 다양했거든요. 항상 인터넷 검색창을 20개쯤 띄워놓아야 했습니다.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문세광이 포사이스의 소설 『자칼의 날』을 읽었다는 얘기를 듣고, 당시 문세광을 조사했던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포사이스가 몇 살인데 인터뷰를 했느냐”며 깜짝 놀라시더군요. 사실 포사이스는 일흔세 살, 김 전 장관은 일흔두 살로 포사이스가 딱 한 살 많습니다. 1971년 나온 그의 첫 작품 『자칼의 날』이 워낙 정교하게 씌어 김 전 장관이 작가의 나이가 자신보다 훨씬 많은 줄 아셨나 봅니다. 기사를 다 넘기고 나니 마치 제가 첩보원이라도 된 느낌이었습니다. 에디터에게 “암호명이라도 하나 지어야겠다”고 말했더니 역시나 반응이 별로 안 좋습니다. “어이, 쓸데없는 소리 말고 운동이나 좀 하셔. 그렇게 골골한 몸으로 ‘첩보’는커녕 ‘구보’나 하겠어?” <김선하>

◆20대 중반에 세계적 스트리트 패션 사진작가가 된 남현범씨를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패션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을 거리에서 포착해 사진을 찍습니다. 이런 패셔니스타들을 골라내는 것은 물론 그의 패션 감각입니다. 그에게 “패션이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자기 자신, 자기의 취향을 표현하는 열정과 몸부림”이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한마디로 ‘자기 표현’이라는 것이지요. j와 인터뷰하는 날, 그는 하얀 티셔츠와 진회색 면바지 차림에 헌팅 캡을 쓰고 나왔습니다. 꾸밈 없고, 솔직한 그의 성격이 옷차림에서 배어나는 듯합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이 큰 사람이 패션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는 말도 했습니다. 남 작가는 이날 검정 구두를 신고 있었습니다. 국산 브랜드인데, 같은 디자인에 색깔만 다른 구두를 두 켤레 더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옥스포드화’라고 합니다. 어떤 구두를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저 자신에게 참 미안해집니다. 패션의 ‘ㅍ’자도 모르는 제게 과연 ‘표현하고 싶은 취향’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진 구두는 모두 세 켤레입니다. 저를 표현하기보다는 무좀 방지용으로 갈아 신습니다. 사진기자 박종근 차장의 운동화에 눈길이 갔습니다. 위안을 얻고 싶었나 봅니다. “박 선배는 구두 몇 켤레예요? 난 셋뿐인데.” “나? 하나. 대학 졸업사진 찍을 때 샀지. 그런데 왜?” 박 선배가 참 고맙습니다. <성시윤>

j 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람신문 ‘제이’ 62호
에디터 : 이훈범 취재 : 성시윤 · 김선하 · 박현영 · 이소아 기자
사진 : 박종근 차장 편집·디자인 : 이세영 · 김호준 기자 ,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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