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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와 타이거 우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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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승희
워싱턴 특파원

세상 인심은 덧없고 무섭다. 특히 정치하는 사람에겐 그렇다.

 2009년 1월 20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는 연설문의 교과서였다. “미국은 지금 겨울 한파 같은 어려운 시기에 있지만, 건국의 조상들이 되뇌던 이 구절을 기억합시다. 희망과 도덕성으로 한 번 더 한파를 이겨내고, 다가오는 폭풍을 견뎌냅시다….”

 변화와 희망을 역설하는 47세의 젊은 대통령은 시대의 아이콘이었고, 전 세계의 ‘아이돌’이었다. 그러나 3년 뒤인 2011년 미국은 변화 대신 침체, 희망 대신 절망의 도로를 달리고 있다.

 버지니아주 매클린에서 조지 워싱턴 메모리얼 파크웨이를 달려 오른쪽으로 포토맥강을 낀 채 워싱턴DC로 들어가는 길은 이른 아침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지만 평화연구소를 지나 ‘헌법의 길(Constitution Avenue)’로 들어서면서 감상은 곤혹감으로 바뀐다. 남루한 옷차림의 백인이 들고 있는 ‘HELP(도와주세요)’란 팻말 때문이다. 거지 없는 나라가 있겠는가만, 출근길마다 목도하는 이런 광경은 추락하는 미국 경제를 상징한다. 2주 전부터 버지니아주 교외 도시인 센터빌의 한 상가 입구엔 ‘입주자에게 한 달 월세 무료’란 광고 팻말이 나붙었다. 그래도 상가의 절반은 ‘세놓는다(Rent)’란 종이가 떼어지지 않고 있다.

 고전하는 미국 경제의 현재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희망을 잃어간다는 점이다.

 올 1월 여론조사에서 1년 뒤 미국 경제가 호전되리라는 응답은 40%였으나 지난달 조사에선 26%로 쪼그라들었다. 오바마에 대한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인 39%로 추락했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은 미국의 오늘을 만든 원인을 진단하고 비판하느라 바쁘다.

 반면 위기의 오바마가 내놓은 해법은 고전적이다. 중서부의 평원을 버스로 달리며 직접 민주주의에 호소하고 있다. 연방 부채 협상안을 누더기로 만든 워싱턴 정치를 비판하고 의회를 비난하고 있다. “나는 잘하려고 했는데 쟤들 때문에”라며…. 유권자들은 실망하고 있다. 변화와 희망을 외치던 ‘오바마다움’은 사라졌다. 그래서일까. 지난주 여론조사에서 오바마는 공화당의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에게 처음으로 역전을 허용했다.

 그에게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실업률이 6%를 넘는 상황에서 재선에 도전한 대통령은 4명이었다. 그중 제럴드 포드와 지미 카터, 아버지 부시 등 3명은 패했고, 로널드 레이건만 살아남았다. 비결은 ‘레이건다움’이었다고 정치학자들은 분석했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지폈고, 정치를 재건했다는 거다. 대선을 1년3개월 앞둔 지금 미국의 실업률은 9.1%다. 오바마는 로널드 레이건의 길과 지미 카터의 길 사이에 서 있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오바마가 과거의 타이거 우즈로 돌아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자기 스윙을 잃어버린 채 스윙 폼을 자꾸 교정하려다 보니 더 깊은 슬럼프의 늪에 빠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담대한 희망 2부』를 쓸 때라는 얘기다.

박승희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