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27> 달라진 미셸 위 ‘나는 이제 즐기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8면

2007년 여름의 일이다. 미셸 위의 아버지 위병욱씨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가 “그런 말 하려면 알은체도 하지 말라”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미셸 위는 코너에 몰려 있었는데 그의 부모는 매우 예민했다.

당시 미셸 위는 소렌스탐이 주최한 대회에 부상을 이유로 기권하자마자 다음 대회장인 LPGA 챔피언십에서 연습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비난을 받는 상황이었다. 미셸 위가 기권한 이유는 ‘비회원이 88타 이상을 치면 대회에 나올 수 없다는 규정을 피해가기 위해서였다’는 소문이 돌아 LPGA 선수들도 격분했다.

소렌스탐이 총대를 멨다. “내가 부상으로 기권했을 때는 몇 주 동안 공을 치지 못했는데 미셸 위는 이틀이 지나 연습을 하더라. 그런 식으로 기권하는 것은 주최 측이나 초청자에 대한 존경심이나 책임감이 없는 행위라고 본다.”

미셸 위는 “부상 때문에 기권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사과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그의 말에는 날이 서 있었다. 그래서 더 큰 비난을 받았다고 기자는 본다.

올해 US여자 오픈 기간 중 소렌스탐이 다시 미셸 위를 거론했다. “미셸은 학교 때문에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며, 가능성과 신체적 조건은 좋지만 정신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설 정도로 강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소렌스탐이 오래된 원한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LPGA 투어의 인기를 끌어올려야 할 유망주 미셸 위의 성적이 기대만큼 나지 않자 건넨 충고 성격이었으리라.

미셸 위는 26일 시작되는 캐나디안 오픈을 앞두고 소렌스탐의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다른 사람의 기대를 채워주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대학을 다니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지 골프를 위한 결정이 아니다. 대학을 다니는 건 내 인생에서 내가 처음 혼자 힘으로 결정한 소중한 것 중 하나다.” 4년 전과 달리 여유가 있는 담담한 말투였다고 한다.

미셸 위처럼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은 선수는 드물다. 그는 12살부터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살았다. 남자의 벽을 깰 수퍼여전사에서 추락하는 그의 모습은 드라마틱했다. 거액의 스폰서, 실격, 일사병, 꼴찌, 부상, 대선수와의 불화 등 주변인들의 흥미를 돋울 사건들이 자주 나와 더욱 그랬다. 그가 부상 속에서 성적을 내지 못했을 때 받은 비난과 조소는 타이거 우즈가 스캔들로 인해 받은 손가락질에 못지않았다.

10대 소녀가 겪기엔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다. 미셸 위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밤에 악몽을 꾸기도 한다. 연쇄 살인범이 나를 쫓는 꿈 같은 것이다. 살인범은 매일 다른 사람이다. 골프에 대한 꿈도 꾼다. 티타임에 늦었는데 누군가 골프장에 들어서지 못하게 나를 막아선다. 이런 꿈도 있다. 칩샷을 했는데 그린이 유리로 만들어져 공을 세울 수가 없는 거다. 공을 치면 그린을 넘어가고, 치면 또 넘어가고…. 그래서 부드럽게 치면 다시 공이 되돌아오는 꿈.”

그 악몽을 이겨낸 것은 대단한 일이다. 어쩌면 14살에 미셸 위가 PGA 투어에서 언더파를 친 것보다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촉망받던 아역배우가 마약에 찌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수많은 스포츠 유망주들이 깊은 골에 들어간 후 나오지 못한 경우가 많다. 높이 올라갔던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미셸 위가 그 깊은 수렁 속에서 살아나와 LPGA 투어 2승을 하면서 재기할 수 있었던 단초는 대학 일지도 모른다. 비난 속에서도 학교를 다니겠다는 강한 심지가 그를 일으켰다. 대학에서 다양한 사고를 배우고 취미활동을 통해 여유를 배우지 못했다면 아직도 수렁 속에서 헤매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미셸 위는 “학교는 내가 평범한 18살 아이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왔다”고 말했다.

미셸 위의 이 말이 마음에 든다. “골프는 매우 긴 길이다. 나는 굴곡을 겪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또 내가 겪었던 일들과 맞선 나 자신에 대해 자부심이 든다. 나는 이제 즐기고 있다. 이제 게임은 아주 재미있다. 그래서 나는 예전보다 훨씬 더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명문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세계랭킹 상위권을 유지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는 내년 초 스탠퍼드에서 졸업한다. 세 번째 우승이 머지않았으리라 기대한다.

성호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