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세설(世說)

아동학대, 강 건너 불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최근 ‘미국 정신의학저널’에 의미심장한 기사가 게재됐다. 어릴 적에 학대를 경험한 아동은 장기간 재발 위험이 높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일반 아동에 비해 2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였다. 학대로 인한 후유증에는 우울증 외에도 자아존중감 저하, 불안, 비행 등의 정서·행동적 문제가 포함된다. 칼리지런던대학교 연구팀은 어릴 적 학대 경험이 뇌와 면역계 및 일부 호르몬계의 변화를 초래해 발생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한 해 동안 5657건의 아동학대 사례가 보고됐다. 이 중 37.3%가 반항, 충동, 공격성, 거짓말, 도벽 등의 적응·행동 문제였고, 36.2%는 주의산만, 과잉행동, 오락중독 등 정서·정신건강 문제였다. 그러나 전체 사례 중 단 9.1%만이 의료와 심리치료 서비스를 제공받았다. 한마디로 예산과 인력부족 때문이다.

 미국 미주리주에는 ‘Boy and Girls town of Missouri’라는 학대 피해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거주형 치료시설이 있다. 4개의 캠퍼스로 이루어진 이 시설은 주 내 88개 지역의 학대 피해 아동을 보호하고 치료한다. 이곳의 특징은 정신과의사에서부터 사회복지사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24시간 아동들과 함께 생활하며 치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또한 치료 대상을 세부화해 대상별로 차별화된 치료가 이루어진다.

 이제 국내에서도 거주형 치료시설인 아동보호치료시설에 대한 기틀이 마련되었다. 여기에는 격리보호가 필요한 아동 중 정서·행동적 문제로 인해 치료의 시급성이 높은 아동이 입소하게 된다. 또한 생활복지사와 치료사가 상주해 아동 보호 및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므로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정부를 비롯한 지자체의 적극적인 노력이 더욱 필요하며, 무엇보다 시설운영을 위한 예산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 또한 아동학대가 아동 개인의 발달을 저해할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이 미치는 사회문제라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아동 성범죄나 연쇄살인과 같은 끔찍한 기사를 접할 때면 우리는 범죄자를 향해 분노한다. 하지만 유년기에 그들이 경험한 아동학대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그들이 홀로 학대의 아픔 속에 있을 때 우리 사회는 그들의 소리를 듣지 않았다. 그 결과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 것이다. 이제 정부가 나설 때가 왔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