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첫선 보인 박근혜 대북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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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3일 자신의 대북정책 구상을 언론에 공개했다. 미국의 외교정책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최근 호에 기고한 글의 한글본이다. 이 글에서 박근혜 전 대표는 ‘신뢰외교’와 ‘균형정책’이라는 말로 자신의 대북정책을 요약하고 ‘남북관계 새 틀 짜기’를 위한 기본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남북한 사이의 진정한 화해를 어렵게 하는 기본적 요인이 신뢰의 부족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동시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남북한 사이의 신뢰는 최저 수준이라는 점이 역설적으로 새롭게 신뢰를 구축할 기회라고까지 지적했다. 이어 박 전 대표는 한반도에 신뢰외교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의 대북정책을 새롭게 발전시켜야 한다며 ‘균형정책’을 제시했다. 단호한 입장이 요구될 때는 더욱 강경하게 대응하고 협상을 추진할 때는 매우 개방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 균형정책의 요지다. 박 전 대표는 특히 신뢰외교와 균형정책 모두가 다자적(多者的) 안보네트워크와 미·중 등 국제사회의 지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성공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박 전 대표의 구상에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없다. 다만 지난 20여 년 사이 역대 정부 대북정책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을 모두 짚고 이를 함께 아우르는 대북정책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정책 논의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특히 위기를 기회로 반전(反轉)시키는 발상을 통해 교착상태가 영원할 것 같은 남북관계의 얽힌 실타래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한 것은 매우 전략적인 선택이다.

 박 전 대표의 구상은 아직은 큰 그림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정책을 실천해 나가느냐다. 특히 국제사회의 규범을 무시해온 북한을 상대로 새 대북정책을 펴나가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를 둘러싼 토론이 활발히 벌어져 앞으로 안정적 대북정책을 펼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