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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운명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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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작전명 ‘인어의 새벽’ … 트리폴리 환호 무장한 리비아 시민군이 22일(현지시간) 트럭을 타고 수도 트리폴리 중심가를 달리며 트리폴리 장악을 자축하고 있다. [트리폴리 로이터=뉴시스]

알이슬람

리비아 최고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affi·69) 정권이 붕괴했다. 1969년 27세의 나이로 쿠데타에 성공한 뒤 42년간 리비아를 철권 통치하던 독재자는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이웃 나라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 영향으로 지난 2월 15일 시작된 리비아 사태는 6개월여 만에 종착역에 다다랐다.

 리비아 시민군은 22일(현지시간) 작전명 ‘인어의 새벽(Mermaid Dawn)’이라는 진격 작전을 통해 카다피의 보루였던 수도 트리폴리의 대부분을 장악했다고 이날 알자지라 방송이 보도했다. 시민군은 전날 7남 카미스(27)가 이끌던 트리폴리 외곽을 지키던 최정예부대 32여단(일명 카미스 여단)을 격퇴하고 시민의 환영 속에 수도에 입성했다. 지리멸렬하던 시민군이 승기를 잡은 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공습과 군사 지원이 큰 힘이 됐다.

 시민군은 21일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과 3남 사디를 생포했다. 카다피 후계 1순위였던 사이프 알이슬람은 카다피와 함께 반인륜 범죄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ICC)의 체포영장이 발부돼 있다. 카다피의 장남 무함마드도 시민군에 체포됐다.

리비아 트리폴리의 그린 광장 게시판에 붙은 카다피의 초상화가 22일(현지시간) 시민군과 주민들에 의해 심하게 찢겨져 있다. [뉴욕 타임스=본사 특약]

 정권을 지탱하던 세 아들이 체포되며 카다피의 최후가 가까워지고 있다. 그의 행방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카다피는 전날 세 차례 국영 라디오에서 방송된 육성 녹음을 통해 “항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시민군을 대표하는 과도정부위원회(NTC)의 무함마드 압둘 잘릴 위원장은 22일 “카다피가 망명한다면 카다피와 가족들이 안전하게 떠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겠다”고 말했다.

  카다피 군은 22일 카다피의 관저가 있는 바브 알아지지야 기지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였다. 기지에서 나온 탱크들과 기관총을 탑재한 트럭들이 도심을 돌며 시민군을 공격했지만 곧 격퇴됐다. 시민군의 런던 주재 부대사인 마흐무드 리쿠아는 “ 시민군은 22일 오후까지 트리폴리의 95%를 장악하고 통제를 확고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천 명의 트리폴리 시민이 ‘순교자 광장’으로 이름을 바꾼 ‘그린 광장’에 나와 시민군을 환영했다. 시민들은 “알라 악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쳤다.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은 카다피의 즉각 항복을 요구하며 ‘포스트 카다피’를 논의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1일 성명에서 “카다피 정권은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리비아 국민은 보편적 가치인 존엄과 자유가 독재자의 철권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한편 외교통상부는 트리폴리와 벵가지에 각각 14명과 5명의 교민이 체류 중이며 모두 안전이 확인됐다고 22일 밝혔다. 리비아에 진출한 국내 건설업체들의 공사에는 큰 차질이 없을 전망이다. 대우건설 트리폴리 지사장인 정재학 상무는 “시민군이 해외 기업이 체결한 계약을 존중하겠다고 한 만큼 공사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제르바(튀니지의 리비아 접경지역)= 이상언 특파원

◆바브 알아지지야(Bab al-Azizija)=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카다피의 관저 겸 복합단지. 6㎢ 면적에 행정건물, 가족 주택, 경호부대 등의 군사시설을 갖추고 있다. 1986년 카다피 제거를 위해 이뤄진 미국의 폭격 이후 대부분의 시설에 지하통로와 3중의 콘크리트로 둘러싼 벙커 등을 건설해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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