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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많이 만들어야 ‘통일 뒤의 통일’ 가능해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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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호 12면

슈미트-괴델리츠 이사장은 ‘실향민’ 출신이다. 땅부자였던 그의 집안은 재산을 동독 정부에 몰수당하고 서독으로 이주했다. 통일 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동·서 화합 운동을 펼치고 있다. 최정동 기자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독일 국민은 통일의 감격을 맛봤다. 장벽은 사라졌지만 구(舊) 동·서독 주민들 사이에 ‘마음의 벽’이 남았다. 98년 설립된 독일 동서포럼(Ost-West Forum)은 국민 화합을 위한 대화 모임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민간단체다. 설립자는 악셀 슈미트-괴델리츠(Axel Schmidt-Gdelitz·69) 이사장이다. 그가 한국을 방문했다. 23일 대화문화아카데미(원장 강대인)와 프리드리히에베르트재단 서울사무소가 공동 개최하는 토론회에 연사로 참석하기 위해서다. 토론회 제목은 ‘내적 통합을 위한 여정: 통일 동·서독 주민 간의 대화’다. 19일 프리드리히에베르트 재단 서울사무소에서 슈미트-괴델리츠 이사장을 인터뷰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독일은 갑자기 통일이 돼 실수를 많이 했다. 한국은 독일의 여러 실수와 시도를 보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슈미트-괴델리츠 이사장의 이야기 속에서는 통일 대비를 위해 귀담아 들을 만한 교훈이 많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악셀 슈미트-괴델리츠 독일 동서포럼 이사장

-동서포럼을 창설한 이유는.
“동·서독 사람들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서로 알게 해 편견을 없애고 간극을 줄이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았다. 체제의 영향으로 좋든 싫든 서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통일 후 동독에서는 대규모 실업이 발생했다. 여기에 옛날 재산의 소유권 문제나, 누가 국가공안국(슈타지)에 협력했는지와 같은 과거 청산 문제 등 통일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많은 동독 사람이 ‘2류 국민’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됐다.”

-동독 주민이 2류 국민이라고 느끼는 것은 정부 정책 때문인가.
“정부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 사이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의식 때문이다. 서독 사람들은 두 개의 독일 중에서 서독이 우월했기에 자신들이 더 나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동독 헌법보다 서독 헌법이 더 낫고, 서독이 이룬 게 더 많고, 동독 재건에 돈을 댄 것도 서독이고… 서독의 업적을 서독 사람들이 ‘개인화’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동독이 망한 것은 공산주의 체제만이 아니라 동독 사람들이 무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계획경제에서는 사람들의 창의성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독 사람들은 시장경제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를 몰랐고 서독 사람들보다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를 근거로 서독 사람들이 거만해졌다. 대화할 때 무의식적으로 동독 사람들이 모욕감을 느낄 만한 언행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심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동독 투자 자본의 95%가 서독 것이고, 동독 지도층 엘리트가 다 서독 출신으로 교체됐다. ‘3류 서독인들이 와서 1류 동독인들의 자리를 다 차지했다’는 말도 있다. 동독 사람들을 두고 ‘저 사람도 슈타지가 아니었을까’ 하고 의심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가 합쳐져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눈높이를 나란히 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적 편견은 세계 모든 나라에 있다. 편견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 편견 해소보다는 일자리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두 가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자리는 당연히 중요하다. 인간적인 삶의 기본 조건이다. 그런데 지역색에 따른 차이가 과거 동·서독의 체제가 달라서 빚어진 차이는 다른 문제다. 체제의 편견이 만든 편견은 얼마든지 계몽으로 줄일 수 있다. 상대에 대한 무지는 편견을 갖게 하는 토양이다.”

-간극을 없애기 위해 동서포럼이 사용하는 구체적 방법은.
“매달 10명을 초청해 ‘삶의 이력(履歷) 대화’를 진행한다. 동독 사람 5명, 서독 사람 5명, 남자 5명, 여자 5명, 직업이 다른 사람, 정치적 사상이 다른 사람…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기준에 맞춰서 초청한다. 슈타지 요원이었던 사람, 슈타지 때문에 감옥에 갇혔던 사람, 대지주였던 사람, 전 대통령의 딸, 동독 국방부 장관을 지낸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대화 모임에 지금까지 1600명이 참석했다. 어느 정도 오피니언 리더라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자유롭게 이야기하면 되나.
“그냥 얘기하라면 중요하지 않고 지엽적인 얘기만 할 수 있으니까 처음 30분은 자기 삶에서 중요한 기간에 대해서 얘기하게 하고, 후반 30분은 다른 사람들이 질문을 하게 한다. 진실이란 내게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있다. 참석자들이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은 가족, 가치관, 교육, 삶에서 성공과 실패의 순간 등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삶의 자취가 많이 드러난다. 사람의 진실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느냐에서 나온다.”

-대화 모임에서 중요한 원칙은.
“절대로 남의 이야기를 평가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것이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이 없다는 전제에서 일단 서로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할 때, ‘저건 사실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대화를 나누더라도 ‘그때뿐’ 아닌가.
“이런 대화가 왜 깊은 인상과 자취를 남기는지는 뇌 연구자들에게서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은 인지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이 연결될 때, 깊이 잠재돼 있던 편견이 변할 수 있는 영향을 받는다. 한번에 곧장 바뀌는 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우리가 하는 삶의 이력에 대한 대화는 그런 인지적이고 감정적인 경험이다.”

-통일을 제일 후회하는 사람들은 서독의 납세자와 동독의 실업자들인가.
“서독 지역의 모든 납세자는 아니다. 납세자 중에서 통일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다. 통일에 관심이 없다면 1유로만 더 내라고 해도 싫은 것이다. 동독 지역의 실업자 문제는 퍽 심각하다. 실업은 서독 출신에겐 익숙한 일이지만 동독 사람들은 실업자가 되면 엄청난 모욕감을 느낀다. 사회주의 시절 동독 사람들은 다 집이 있었다. 식료품이나 대중교통비는 쌌고, 의료비와 대학교육비는 공짜였다. 여기에 더해서 동독 사람들은 통일을 통해 서독 같은 소비생활도 하고 싶었다. 서독 사회도 통일 전후로 많이 달라졌다. 통일 전에는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 내에서 평화로운 발전을 이루면서 동독에 대해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려 했다. 통일 후에는 시장경제가 우월하다는 생각에다 전 세계적인 세계화 추세가 맞물려서 더 냉정한 분위기가 됐다.”

-통일 후 혼란을 틈타 범죄가 증가하는 일은 없었는가.
“통일 후 범죄가 늘어났다는 통계는 본 적이 없다. 현재 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서독 지역의 두 배쯤 된다. 그러나 범죄율은 높지 않다. 동독에서 범죄율이 더 높아야 할 이유는 없다. 지금 동독 지역과 서독 지역은 사회 인프라 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 동독 지역도 철도·병원 등 현대 산업사회가 갖춰야 할 것이 잘 갖춰져 있다. 그런 점에서 통일 이후 지금까지 21년 동안 엄청나게 큰 업적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동독 지역의 환경오염도 덜해졌고, 심지어 평균수명도 2, 3년쯤 늘어났다.”

-막대한 통일비용 지출에도 불구하고 독일 경제는 강하다. 유럽연합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시선이 독일을 향한다. 비결이 뭔지 궁금하다. 독일인의 창의성·근면성 덕분인가.
“창의성·근면성을 내 입으로 자랑하기는 좀 그렇다. 통일 즈음에 독일은 경제위기를 겪고 있었는데 통일로 그 위기가 사라졌다. 아무것도 없었던 동독에서 온갖 주문이 쇄도했다. 그런데 독일 경제가 왜 강한지 근본적인 이유를 묻는다면 창의성·근면성에 더해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독일인의 기질을 꼽고 싶다. 독일 사람들은 더 잘할 수 있는 게 뭔지를 늘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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