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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1. 청산별곡 (1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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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남해는 몽골군의 말발굽이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방심했던 것인데 왜구가 그 허를 찔렀다. 판당 자물쇠를 바꿔 채우고 초병들이 밤낮으로 경계를 섰다. 포구마다 기찰을 늘렸다.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도록 군선도 대기시켜 놓았다.

 이참에 판당을 대국산성 안으로 옮겨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다수가 찬성했다. 그걸 반대하고 나온 이가 일연이었다.

일러스트=이용규

 “불가하오. 경판은 무턱대고 잘 지켜내기만 하면 되는 그런 보물이 아니오.”

 모두가 뜨악한 표정들이었다.

 “무슨 그런 요상한 말씀이래요, 스님! 우리가 밤낮 쌔빠지게 고생해서 새긴 경판들이오. 땅에 깊이 묻더라도 어쩌든지 도둑맞지는 말아야 할 것 아뇨?”

 늙수그레한 각수장이가 잔주름이 그물 쳐진 얼굴을 찌푸렸다.

 “부처님 말씀은 부처님과 한가지요. 따라서 부처님 말씀을 새긴 경판들은 우리 모두가 경배할 성물이 되는 것이오.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산성 안에 숨겨둔다면 거룩함을 스스로 빛바래게 하는 일이오.”

 일연의 말이 옳았다. 경판은 원칙적으로 다량의 경전을 인쇄할 목적으로 새긴다. 하지만 꼭 실용적인 인쇄도구인 것만은 아니다. 경판 그 자체로 예배 드릴 만한 가치를 지닌다. 내가 동의하자 정안이 결론을 내렸다.

 “조만간 강도에 다녀올 계획이다. 아무래도 판당은 내륙 깊숙한 산중에 다시 세워야 할 것 같다. 그때까지 잘 지키면 될 일이야. 잃어버린 경판들은 인쇄해 놓은 걸 판하본으로 써서 다시 새길 것이다. 내일부터 당장 시작한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대역사를 완수할 참이다. 두 번을 도난 당하면 세 번을 새길 것이고 누군가가 열 번을 불사르면 열한 번을 다시 새길 것이다. 또한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다. 그러니 동요하지 말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묵묵히 일하라.”

 정안은 반석처럼 굳세고 믿음직스러웠다. 그는 소 한 마리를 잡게 하여 고깃국을 끓이고 분사대장도감 일꾼들을 먹였다. 종상에게서 은병을 빼앗지도 않았다. 나는 그의 장부다움에 조복되었다. 돈이 많다고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다. 뚜렷한 소명의식이 있어야 하고 마음 안에 불보살이 살고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큰 지혜는 작은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 거룩한 행원(行願)은 온 우주에 가득 찬다. 나는 문수보살의 지혜와 보현보살의 실천력을 정안에게서 보았다.

 “그래도 탁연에게 추격자들을 붙여야지 않겠습니까?”

 저녁에 정안을 독대하게 되자 내가 일렀다.

 “아니오. 난 그 화상을 잘 아오. 아직 추정할 뿐 단정할 순 없소. 만일 말이오. 만일 그가 왜구들에게 경판을 넘겼더라도 다른 깊은 뜻이 있었을 것이오.”

 “은병을 받고 왜놈 거간꾼에게 팔아넘겼다면 돈 때문이지요.”

 나는 수행은 하지 않고 속인들 이상으로 돈에 집착하는 승려들을 무수히 봐왔다. 머리 깎은 자들의 물욕은 너무나 추했다.

 “설사 그랬다 해도 그 돈을 어따 쓰느냐가 문제겠지요. 탁연은 뜻이 높소. 그 화상은 내가 불가에 재산을 헌납하는 걸 몹시 못마땅해했소. 썩어빠진 불가를 더 썩어 들어가게 할 뿐이라면서 말이오.”

 그건 제법 생각이 있는 소리였다. 원효대사는 스스로를 다잡았다. 기도하는 무릎 자리가 얼음 같더라도 불기운을 생각하지 말며 굶주린 창자가 끊어질 것 같아도 먹을 생각 말자고. 그래도 인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수행할 시간은 너무나 짧다. 재물을 탐할 여가가 어디에 있겠는가. 재물을 탐한다면 그는 처음부터 수행하러 절집에 들어온 자가 아니다.

 이 나라는 온통 절집 천지다. 산중이나 마을이나 모퉁이 하나 돌면 절집이 나타날 정도다. 얼치기 중이 세운 절집이라도 금부처만 갖다 앉혀두면 마지쌀과 재물이 알아서 들어온다. 너무 편한 밥벌이다. 손에 흙 묻힐 일이 없고 이마에 땀 낼 필요가 없다. 절집이 세상을 구제하는 게 아니라 전쟁 중에 세상 사람들이 절집을 먹여 살리느라 똥이 빠진다.

 “아무리 두둔하셔도 전 탁연의 행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밀 승정이 이해 못하시는 게 어디 그뿐이오?”

 정안은 관상을 잘 봤다. 따지기 좋아하는 내 성정을 제대로 꼬집었다. 다소 기분이 상했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용은 내게 없는 미덕이었다. 관용보다 원칙을 더 중시해야 세상이 밝아진다고 믿는 나였다. 그래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는 일연조차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참이었다.

 언젠가 수기 스승이 일러줬었다. 수행자라 해도 한 가지쯤의 예외는 허용해야 한다고. 살인과 도적질, 세상에 덫 치는 행위와 음란행위만 아니라면 한 가지쯤의 기벽이나 취미생활은 인정해 줘야 한다고. 중도 사람인데 안 그러면 뭔 재미로 살겠느냐고. 대중들이 모여 살기 위해 계율을 정했지만 저마다 처한 입장과 현실을 감안해서 절실한 것들은 눈감아 줄 필요가 있다고.

 “어르신께서 탁연을 불러들였습니다. 이런 일을 예상 못한 건 아니겠지요?”

 어젯밤, 산 아래 바람 부니 장차 벌레가 들 거라고 했던 당신이지만 탁연의 관상은 잘못 봤다는 지적이었다.

 “탁연은 도적이 아니오. 방참(謗讒)하지 마오.”

 정안은 끝까지 탁연을 두둔했다. 가당찮다. 내가 언제 그자를 비방하고 중상모략 했다는 것인가. 대장도감 감찰 신분인 나는 실증주의자며 원칙주의자다. 정황이 확실하고 증거가 명확한데도 그걸 외면하고 있는 건 오히려 정안이다. 나는 이제 그런 정안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의자에서 일어난 그가 옥피리를 꺼내왔다. 한 뼘 반 길이의 쌍피리였다. 옥돌로 두 개의 피리를 깎고 붙인 것이었다.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송나라에서 들여온 아악(雅樂)이나 사악(詞樂)이 아닌 고려의 향악(鄕樂) 가락이 흘러나왔다. 속되다. 그렇다고 흥겹거나 음란한 건 아니다. ‘정과정’도 아니고 ‘가시리’도 아니다. 어디서 들어본 가락 같기는 한데 귀에 설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량셩 얄라리 얄라

 울어라 울어라 새여

 자고 일어나 울어라 새여

 너보다 시름 많은 나도

 자고 일어나 울며 지내노라

 얄리얄리 얄량셩 얄라리 얄라

 천하의 정안이 속요를 불렀다. 무인정권의 집정 최이의 처남으로 최고 권력을 누려온 그였다. 그가 개경이나 강도를 떠나와 청산과 바다에 묻힌 까닭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함이었다. 권력이라는 불을 가까이서 쬐다 보면 자신이 타버리는 수가 있었다. 집정 최이가 누군가. 불을 뿜는 독룡이었다.

 어디다 던지던 돌인고

 누구를 맞히던 돌인고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맞아서 울고 있노라

 얄리얄리 얄량셩 얄라리 얄라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다에 살어리랏다

 나문재 굴조개 먹고

 바다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량셩 얄라리 얄라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눈을 감았다.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고통인 것인가. 정안 같은 이가 괴롭다면 세상에 어느 누가 행복한 것인가. 나는 행복이 뭔지 모른다. 그저 하루하루 소임을 살 뿐이다. 더러 불만은 있지만 그렇다고 딱히 괴로울 것도 없다. 임시수도인 강도에 살건 청산이나 바다에 살건, 별반 달라질 건 없다. 나는 맹물 같은 삶을 택한 중이니까.

 사람들은 말한다. 붕붕거리는 한때의 즐거움이 지나면 기나긴 괴로움의 바다가 펼쳐진다고. 괴로움이 끝없는 인간세상에서 부처가 깨닫고 내린 결론은 반복되는 윤회의 끈을 자르는 거였다. 태어나지 않으면 고통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전란 속에서도 짝짓기는 밤낮으로 벌어지고 세상에는 쉼 없이 새 생명이 태어난다. 공중을 나는 것들, 땅을 기는 것들, 물속을 헤엄치는 것들은 윤회의 끈을 자를 줄 모른다. 오직 인간만이 그런 시도를 한다. 모든 인간이 윤회의 끈을 끊어 마침내 지상에서 사라지면 지상은 극락이 될 것인가. 인간들이 떠난 지상은 날고 기고 헤엄치는 것들의 세상이 되리라. 인간이 사라진다고 뭇 생명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극락이라면 인간의 지상 출현은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다. 석가모니 부처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방해꾼밖에 안 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을.

 “그만 돌아가소.”

 노래를 마친 정안이 조용히 말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떠나란 말이오. 지밀 승정이 할 일은 다했으니까. 수기 도승통께는 사실대로 보고하시오. 나머진 내가 다 알아서 할 거라고. 강도에 한번 올라가리다. 황제께서도 최이 집정께서도 날 원하니까.”

 “아, 예.”

 다시 독대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이대로 물러나자니 뭔가 개운치가 않다. 정안의 말대로 내 할 일은 다한 셈인데 무엇이 더 남았을까. 나는 도로 의자에 앉았다.

 “할 말이 남았소?”

 “그게….”

 “그대는 폐안(<72F4><72B4>)이오.”

 “네?”

 “용(龍)의 아홉 자식 가운데 정의를 수호하려고 눈 부릅뜨고 애쓰는 폐안이라는 말씀이오. 용은 못 되지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이오. 오래 살아남아서 제 역할을 다할 거요.”

 정안은 지금 내 관상을 봐주고 있었다. 신기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속에 남았던 거스러미 같은 것이 깨끗이 사라졌다. 맞다. 나는 아직까지도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는 남해를 떠나 집정 최이의 형, 만종(萬宗)이 주지로 있는 산청 단속사를 거쳐 김승이 있는 변산으로 갈 예정이다. 전쟁이 소강상태이기 때문에 도중 몽골군을 만날 리는 없다. 명화적패도 걱정할 게 못 된다. 늙은 말밖에 없는 빈털터리 중을 해칠 까닭이 없으므로. 그렇다면 역시 김승 만나는 걸 무의식중에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정안은 내가 오래 살아남는다고 한다. 살아남는다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 나는 정안에게 머리를 숙이며 합장했다.

 “이 『묘법연화경』 한 질을 가져가오. 변산 김승에게 전하고 6만9384자 하나하나 잘 새겨서 속히 보내라 하오. 내 소의경전이니 천금인들 아끼겠소.”

 경전 꾸러미를 가지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일연을 찾았다. 아직 초저녁이었다. 일연의 옆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연이 노모 방에 건너와 노모의 팔다리를 주물러 주고 있었다. 나는 두 모자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일연 그대는 출가를 한 게 아니네. 노모와 함께 절집으로 이사 온 것일 뿐.’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계율을 엄격히 지켜온 청정비구다. 사사로운 정리 따윈 나를 흐려놓지 못한다. 그런데도 정안은 나를 폐안이라고 한다. 눈 똑바로 뜨고 있으되 용은 못 되는 짐승 폐안이라고. 출가해 놓고서도 속가의 노모를 모시고 다니는 일연에게는 기린의 뿔이라고 극찬하면서.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행장을 꾸렸다. 아침 일찍 이곳을 떠날 참이었다.

 “여보게 지밀! 날세.”

 나직하고 촉촉한 목소리다. 내가 방문을 열자, 일연이 커다란 얼굴 가득 넉넉한 미소를 흘리고 서 있었다. 사람을 끄는 편안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이럴 때 보면 도무지 선객 같지가 않았다.

 그의 방으로 갔다. 작업대에 밋밋한 경판이 끼워져 있었다. 판하본을 뒤집어 붙이고 들기름을 칠해서 글자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글자들이 종이 뒤로 비치기 때문에 거꾸로다.

 “이게 뭔가?”

 “석린이라고 하는 내 제자가 사경한 『반야심경』이네. 우리 이 경전을 몇 글자라도 함께 새겨보세.”

 일연이 나를 의자에 앉힌 다음 조각칼을 건넸다. 나는 왼손에 조각칼을 쥐고 오른손에 망치를 잡았다. 망치로 조각칼 머리를 두드리며 오른쪽 변계선과 위쪽 변계선, 아래쪽 변계선과 제목 오른쪽 빈 공간을 갈랐다. 그런 다음 끝이 둥근 조각칼로 바꿔 들고 빈 공간을 따냈다. 제목 왼쪽과 본문 첫째 줄 사이도 마저 팠다.

 “제법인걸. 글자들도 새겨보게.”

 마하(摩訶) 두 글자를 새기고 나자 그가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그는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이라는 나머지 제목 글자를 새겼다. 나보다 숙련된 솜씨였다.

 “이제 자네가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을 새기게나.”

 치기 어리다고 생각되었지만 그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됐네. 여기 새긴 것처럼 자넨 이제부터 관자재보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네.”

 그렇게 새겨놓고 보니 내가 정말 관세음보살이 된 것만 같았다. 일연은 말과 글의 마력을 아는 선객이었다. 내가 가슴에 충만한 기운을 느끼고 앉아있자 그가 다시 읊조렸다.

 “중생의 괴로운 소리를 잘 살펴보고 구제해야 하네. 듣는 게 아니라 살펴보아야 하네. 훗날 자네가 다시 여기에 오게 되면 나머지 글자들을 함께 새기도록 하세.”

 관자재보살이 내 심장을 화인(火印)처럼 지지고 들어왔다.

글=김종록 소설가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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