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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재계 반응·움직임] 북특수 기대…돈줄이 관건

중앙일보

입력

경제계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 소식이 전해지자 일제히 환영하면서 '북한 특수(特需)'를 기대했다.

기업들은 그동안 추진해온 38건(투자금액 2억2천5백37만달러)의 남북경협 사업을 점검하면서 앞으로 정부당국 협정이 진행돼 경협과 투자 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등 외국기업 단체와 기업들도 북한 진출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정부와 경제계는 특수가 예상되는 분야로 사회간접자본(SOC)투자를 비롯 섬유·가전 등 소비재,농어업 생산 기반과 에너지 시설 투자 등을 꼽았다.그러나 경제력이 약한 북한에서 대규모 특수가 일어나려면 탄탄한 자금 줄이 기본이며,만약 문제가 생길 경우 정부가 이를 보장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자금줄이 관건=동원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북한 특수용 자금원은 ▶한국 정부의 직접 지원▶북한의 대일(對日)청구권 자금(약 50억달러)▶일본·미국 등 외국 기업의 컨소시엄 참여▶국제(금융)기구 자금▶한국 기업의 자체 자금 등 크게 5가지다.

이 가운데 한국 정부의 직접 지원금이 가장 확실하지만 그 규모가 한정돼 있다.이헌재 재경부장관은 10일 "정부가 당장 남북경협을 지원하는데 쓸 수 있는 재원은 대외협력기금·남북협력기금·한국국제협력단 자금 등 약 9천억원”이라며 "수출입은행의 수출·생산 지원자금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일청구권 자금은 현재 북한과 일본이 교섭 중이며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외국 기업의 참여는 북한의 국가신용도가 낮다는 점이 제약 조건이다.

세계은행(IBRD)·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금융기구는 베트남에 고속도로 재건 및 전력설비·농업개발용으로 1994∼97년 각각 13억달러 정도씩 지원했다.국제식량농업기구(FAO),국제통화기금(IMF) 등과 이스라엘에 전쟁복구 자금을 지원한 적이 있는 특별신탁기금(STF)으로부터의 지원도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이를 의식해 '한국이 지급보증을 서 줄 수 있음'을 밝혔다.국제금융기구 자금을 지원받으려면 먼저 북한이 이들 기구에 가입해야 하며,국제사회에 들어온 북한이 자연스럽게 서서히 여러가지 체제의 변화를 일으키리란 예상이다.

홍지선 무역투자진흥공사 북한실장은 "북한이 국제기구에서 자금을 지원받으려면 먼저 국제기구에 가입해야 하는데 아직 그럴만한 여건이 못된다”면서“당장은 우리 정부가 우리 신용으로 돈을 빌려다 북한에 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이 자체 자금으로 투자하는 방식은 자금 조달도 쉽지 않지만 투자 위험도가 높아서 선뜻 나서기 어렵다.이 때문에 업계는 현재 북한에서 진행 중인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경수로 발전 방식이 적합하다고 주장했다.미국·유럽·일본 등과 한국이 자금을 모아 지급을 보증하고,주로 국내 기업들이 북한에서 공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정부가 IBRD·ADB 등의 차관 조달을 통해 남북한간 철도·도로를 연결하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고▶민간 차원의 교류는 북한내 수출공업단지 건설과 중소형 투자 사업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망 사업은 많다=재정경제부는 ▶도로·철도 등 SOC▶농어업 생산기반 ▶소비재 산업▶에너지 시설 투자 등에서 북한 특수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대기업들은 북한의 SOC 정비사업 물량이 클 것으로 보고 시장 선점에 나설 움직임이다.현대 관계자는 "민간기업으로서 그동안 풀기 어려웠던 대북사업의 걸림돌이 정치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현대는 2대 사업 중 금강산 관광사업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순항 중이나 서해안 공단사업이 지지부진해 애를 태웠는데 정상회담을 계기로 급진전될 것으로 기대했다.현대는 이달 20일 전후로 예정된 정주영 명예회장의 방북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대는 이밖에도 ▶남북공동 영농사업(83만달러)▶컴퓨터 조립라인 수출(연산 2만대·1백55만달러)▶지붕재 생산설비 수출(1백90만달러)▶인터넷·통신사업▶북한 SOC투자 사업▶해외 건설시장 공동 진출 등이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했다.

LG건설은 북한의 항만·정유·도로 등 인프라 구축사업에 참여하겠다며 LG상사와 공동으로 전담팀을 구성했다.LG상사 지역개발팀 이종근 부장은 "그동안 벌여온 가리비 양식,전자제품 임가공 등은 시범사업이며,장기적인 목표는 SOC사업 참여"라고 강조했다.

LG측은 경협의 활성화 정도에 맞춰 ▶백색가전 생산시설을 옮기고▶화학·전자·정보통신 제품 생산시설을 북한에 건립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대우건설도 SOC 사업팀이 대북사업 타당성 조사에 착수했으며,항만·철도부문에 특화해 참여할 방침이다.대림산업 역시 항만·도로·다리 등에 특화된 대북사업을 중점 검토하면서 SOC사업팀을 사업부로 승격시켰다.

한국토지공사는 98년 중단된 나진·선봉 공단 개발사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토공은 이와 함께 원산·신의주·남포 등 5곳에 대한 공단 개발 타당성 조사에 대한 검토도 진행중이다.

재경부는 SOC 사업의 경우 ▶인력은 북한내 풍부한 인력을 활용하고 ▶건설장비는 국내 유휴장비로 충당하며 ▶자재는 기존 시설을 개보수해 쓰면 대규모 추가 부담 없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임가공 사업을 하고 있는 전자업계와 중소기업도 사업이 활기를 띨 것으로 보고 있다.삼성전자는 다음달부터 시제품이 생산되는 TV·전화기·카세트 등 임가공 사업과 소프트웨어 공동 개발사업을 우선 추진할 계획이다.

LG전자는 96년 4백50만달러를 투입해 추진하다 보류된 20만대 규모의 TV 합영공장 사업이 다시 추진될 것으로 예상했다.

LG전자 관계자는 "현지에 생산 설비를 모두 갖춘 만큼 남북정상회담 이후 분위기가 좋아지면 언제라도 재가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98년부터 추진해온 섬유·기계조립·라이터 조립생산 등과 관련 생산 기술진의 방북을 타진할 계획이다.

식품업계에선 제일제당이 남북경협 전담팀을 재발족해 밀가루·설탕·식용유와 사료 등을 북한에서 생산하는 사업 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롯데제과와 동양제과는 각각 97년과 96년 이후 중단한 나진·선봉지구 초코파이 공장 설립 계획을 재추진할 움직임이다.

◇외국 기업·단체도 큰 관심=외국 기업들도 한반도의 긴장 완화가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의 불안감을 해소함은 물론 외국 기업의 북한 진출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관계자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가 그동안 계속 지연돼온 주한 미국 기업의 방북 일정을 앞당기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한미상의는 방북 일정이 확정되면 우선 생활용품 회사인 P&G,농산물 회사인 퓨어리나,세계적인 건설 컨설팅 회사인 벡텔,통신회사인 모토롤라 등을 우선 파견할 계획이다.

주한유럽연합(EU)상공회의소도 나진·선봉과 평양 등을 방문할 계획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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