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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덕은 왜 빈방을 찍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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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주명덕씨가 1992년 찍은 경주 양동 관가정. 이미지 비평가 이영준씨는 “그의 사진은 하나하나가 단편소설에 비유될 수 있다”고 평했다.


고즈넉하다. 부옇게 비치는 빛조차 잠잠하다. 그 고요함 속에 탱탱한 무언가가 차오른다. 빈 방이지만 빈 방이 아니다. 흰 벽면을 기하학적으로 분할하고 있는 문 창살이 표정을 짓는다. 곧 저 문을 밀고 누군가 들어올 것만 같아 마른 침이 넘어간다. 이 조용하고 참한 사진 속에 사람살이의 흔적이 가득 찬 공간이 있다. 저 방에 들어가 앉으면 속살속살 옛 얘기가 쏟아질 것 같다.

 사진가 주명덕(71)씨는 1992년 경주 양동 관가정(觀稼亭)에서 만난 이 방을 마음으로 찍었다. 그는 이렇게 사라져가는 것들을 한 컷 한 컷 가슴으로 보듬었다. 빠르게 변전(變轉)하는 한국 풍경이 안타깝고 그리워서 소멸에 대한 저항으로 기록했다.

 ‘주명덕 사진전-마이 마더랜드(My Motherland) 비록 아무 것도 없을지라도’는 지난 40여 년 묵묵히 한국적 아름다움을 좇아온 노장 사진가의 회고다. 근대화란 이름으로 폭풍처럼 휩쓸고 간 시간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이 땅의 풍경이 90여 점 흑백 사진으로 돌아온다.

경북 안동 작업실의 주명덕 작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작가는 경북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110번지 옛 초등학교 분교를 개조한 작업실에서 전시장에 내걸 작품을 고르고 인화하느라 여름을 잊고 있었다. 하루 7~8시간씩 암실에 박혀 오래 전 필름과 씨름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 한 10년쯤 전 작품을 다시 프린트하고 새 작업에 전념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이 탓에 눈이 흔들릴 때는 하루 종일 산을 바라보면 그럭저럭 시력이 쓸 만해 진다며 “카메라는 내 자존심이니까”라고 짤막하게 덧붙였다.

 그는 입으로 찍지 않고 발로 찍는다. 그의 발에는 눈이 달렸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그의 믿음은 신앙 같은 것이다. ‘왜 찍느냐’고 소리 지르며 화내는 사람이 있으면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카메라 셔터를 한 번 더 눌렀다는 그다. 1966년 첫 개인전 ‘포토에세이-홀트씨 고아원’을 시작으로 ‘한국의 이방(異邦)’ ‘한국의 가족’ ‘명시의 고향’ ‘국토의 서정기행’ ‘잃어버린 풍경’ ‘타운 스케이프’까지 그는 사진 속에 한국의 정신을 불어넣었다. 72년 연 사진전 제목 ‘헌사(獻寫)’는 ‘사진을 내 조국에 바친다’는 뜻을 담았다.

 이번 전시의 제목 ‘조국(祖國), 비록 아무것도 없을지라도’에서도 자신의 사진을 ‘한국 사회의 거울’로 삼겠다는 그의 뚝심을 읽을 수 있다. “나는 한국의 자연을 마음으로 이해한 사람이다. 마음속의 풍요로운 조국을 나의 사진을 통해서라도 그대로 전해주고 싶을 뿐이다.”

 꼬불꼬불 산길 따라 1시간 여 차로 들어가야 하는 오지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칠순의 작가 안부를 걱정하는 지인들에게 그는 “나를 찾게 해준 사진과 함께, 난 여기서 나답다”고 답했다.

 2008년 ‘도시정경’, 2009년 ‘잃어버린 풍경’에 이어 3부에 걸친 ‘주명덕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할 이번 전시는 18일부터 9월 25일까지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열린다. 02-720-0667.

안동=정재숙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주명덕=1940년 황해도 신원 생. 62년 현대사진연구회서 사진을 시작한 뒤 73년까지 중앙일보 출판국 월간중앙에서 사진 기획 및 편집 일을 함. 한국 문화유산의 기록, 초상사진, 자연과 도시 풍경 등 여러 분야에서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 사진가로 평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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