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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피서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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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시원한 과일을 먹는 것은 예부터 좋은 피서법이었다. ‘참외(甘瓜)’와 ‘붉은 오얏(朱李)’은 모두 피서를 뜻하는 말이다. 삼국시대 위(魏)나라 조비(曹丕)가 오질(吳質)에게 보낸 편지에 “단 참외는 맑은 샘물에 띄우고, 붉은 오얏은 찬물에 담가 놓았다〔浮甘瓜於淸泉 沈朱李於寒水〕”라고 쓴 데서 유래한 말이다.

 고려 말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얼음을 하사받고 느낀 바 있어서(有懷頒氷)’란 시에서 “오래된 우물이 은병처럼 차기에/참외를 띄워놓을 수 있었네(古井銀甁凍/浮瓜是我能)”라고 읊은 것은 이 고사를 딴 것이다. 반빙(頒氷)이란 여름날 조정에서 벼슬아치들에게 얼음을 나눠주는 것을 말한다. 붉은 오얏(朱李)은 자두인데, 보랏빛 복숭아를 닮았다고 해서 자도(紫桃)라고 썼던 것이 자두가 된 것이다.

 더위와 술은 상극이지만 음주피서법도 있었다. 피서를 명분으로 만드는 술자리가 하삭음(河朔飮)이다. 중국 황하(黃河) 이북인 하북(河北)땅이 하삭(河朔)인데, 『초학기(初學記)』 ‘피서음(避暑飮)’에는 후한(後漢) 말 유송(劉松)이 원소(袁紹)의 자제들과 삼복(三伏) 무렵 하삭에서 매일 같은 술자리로 더위를 잊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벽통음(碧筒飮)도 음주피서법이다. 『유양잡조(酉陽雜俎)』에는 벽배(碧杯)라고 나온다. 위나라 정각(鄭慤)이 삼복(三伏) 무렵이면 빈료(賓僚)들과 사군림(使君林)에서 피서를 했다. 이때 연격(硯格:벼루대) 위에 벼루 대신 큰 연잎을 놓고 술 서 되를 담은 다음 비녀로 잎을 찔러서 줄기의 구멍과 통하게 해서 마시는 것이 벽통음이다. 연잎 색깔이 푸르다 해서 ‘푸를 벽(碧)’자를 쓰는데, 연잎 줄기를 연결한 것이 코끼리 코 같다고 해서 상통음(象筒飮)이라고도 부른다. 연잎에 담긴 술이 연줄기를 통해 나오는 주향(酒香)이 향기롭고 물보다 차가웠다고 전한다.

  선비로서 가장 이상적인 피서법은 독서였다. 허균은 술과 독서를 모두 좋아했다. 그래서 『한정록』에서 “독서로 피서(避暑)하는 것이 정말 하나의 좋은 방법인데 이 술까지 있으니 어떻겠는가”라고 말했다. 반면 정조는 독서 전일파(專一派)였다. 정조는 “더위를 물리치는 데는 독서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독서하면 몸이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마음에 주재(主宰)가 생겨서 외기(外氣)가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일득록』)”고 말했다. 수행하듯이 독서하는 것이 정조의 피서법이었다.

이덕일 역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