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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에 별이 잔콩 마당 같고 ...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30호 10면

나는 밤하늘의 별을 볼 때면 그게 늘 신기했다. 여기서 말하는 밤하늘은 시골의 밤하늘이다. 별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도시의 밤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가령 백석의 ‘박각시 오는 저녁’이란 시에 나오는 ‘한울에 별이 잔콩 마당 같고’ 할 때의 밤하늘이다. 좋은 시는 눈으로 읽어도 흐뭇하지만 소리 내어 읽으면 입과 귀가, 온몸의 세포가 밤하늘의 별처럼 파랗게 눈을 뜨는 느낌이 드는데 백석의 시가 꼭 그렇다. 그러니 아예 전문을 옮겨 보면 이렇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당콩밥에 가지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집은 안팎 문을 횅하니 열젖기고/ 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쐬이는데/ 풀밭에는 어느새 하이얀 대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 돌우래며 팟중이 산옆이 들썩하니 울어댄다/ 이리하여 한울에 별이 잔콩 마당 같고 /강낭밭에 이슬이 비 오듯 하는 밤이 된다.”
나는 여섯 살까지 시골에서 자랐다. 백석의 시를 슬그머니 따라 기억 속 어린 시절의 여름 밤을 떠올려 보면 이렇다.

일찌감치 강낭콩 넣은 밥에 가지냉국의 저녁상을 물린다. 낮에 차가운 우물에 넣어 뒀던 빨간 속살에 씨가 새까만 수박도 쪼개어 한 조각씩 실컷 먹고 난, 올챙이처럼 배가 볼록해진 저녁. 마당에는 모깃불이 맵고 감나무 밑엔 대나무로 만든 평상이 널찍하다. 그 평상 위에서 옛날이야기를 잘해 주시는 할머니 무릎을 베고 어린 나는 아무렇게나 누웠고. 아마 내 얼굴에는 마른버짐, 마른 콧물이 여기저기 피었을 것이다. 팔이며 다리에는 모기에 뜯긴 자국도 있고. 모기도 쫓을 겸 할머니는 천천히 부채를 부치시고. 어린 나는 누워서 밤하늘을 보는데 정말 별이 손에 잡힐 것처럼 바로 눈앞에 뜬다. 별이 얼마나 많은지 밤하늘은 꼭 잔콩 마당 같다. 밭에서는 숨 붙은 것들은 모두 악을 쓰며 우는 것 같고. 할머니 재미진 이야기에 쓰르라미인지 여치인지 알 수 없는 벌레 울음소리에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들면 누군가 어린 나를 들어 방으로 옮겨 눕힌다. 아마 후끈한 햇살과 구수한 쇠죽 냄새가 온 방 안에 북적하도록 늦은 아침까지 나는 게으른 잠을 잘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밤하늘이라야 한다. 밤이면 별이 바로 눈앞에서 뜨는 것 같고 별이 어찌나 많은지 잔콩 마당 같아야 한다. 평상에 누웠다가 돌아눕기라도 하면 어깨에 별이 부딪힐 것 같은 그런 밤하늘이라야 한다. 그런 밤하늘의 별을 볼 때면 나는 항상 신기했다. 그 수많은 별은 지구에서 몇천 광년, 몇만 광년 거리에 있다는데, 그렇다면 그 각각의 몇천 몇만 년 전 과거로부터 달려온 빛들이, 각각 수천 수만의 과거가, 내가 밤하늘의 별을 보는 지금 이 순간 동시에 마치 하나의 사건으로 보인다는 사실이 나는 늘 경이롭다.

한번은 이런 내 생각을 아내에게 말한 적이 있다. 아내는 내 말에 공감했는지 실로 경이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게 뭐가 경이로워? 사람들을 봐요. 다 생년월일이 다르지? 다 오십 몇 년 전, 삼십 몇 년 전, 이십 몇 년 전 각각의 과거로부터 온 사람이 지금 이 순간 동시에 한 세상에서 살고 있잖아.”
이번 여름휴가에는 아내와 함께 ‘한울에 별이 잔콩 마당 같은’ 밤하늘을 봐야겠다.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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