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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대출 받아 투자했는데 … 중산층 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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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5일 종합주가지수가 1943.75에 장을 마감했다. 주가지수가 종가기준 2000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3월 이후 처음이다.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대우증권 트레이딩 센터에서 직원들이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김도훈 기자]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주부 민모(57)씨는 요즘 속이 타들어간다. 그는 지난해 말 딸과 함께 모은 적금과 주택담보 대출로 5000만원을 마련해 직접 주식 투자에 나섰다. 당시엔 주가가 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민씨도 돈을 좀 벌어 딸에게 더 나은 신혼살림을 마련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달부터 증시가 곤두박질치면서 500만원 이상 원금을 까먹었다. 그는 “주가가 너무 떨어져 손절매를 할지, 원금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지 고민”이라며 “가을로 예정했던 딸 결혼식도 미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43)씨는 올 초 코스닥에 투자했던 3000만원을 4일 서둘러 팔아치웠다. 손실이 많이 났지만 주식을 더 가지고 있다간 더 큰 낭패를 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포는 도미노처럼 확산됐다. 세계 경기의 ‘더블딥(이중 침체)’ 우려에 천정부지로 치솟던 금값마저 하락세로 돌아섰다. 유가도 최근 6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4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9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유(WTI)는 전날보다 5.30달러(5.8%) 내린 배럴당 86.63달러를 기록했다. 미국과 유럽 증시를 휩쓴 공포는 코스피까지 나락으로 밀어 떨어뜨렸다. ‘검은 금요일’인 5일 코스피 하락폭은 74.72포인트에 달했다. 최근 나흘 새 228.56포인트(10.95%)가 빠졌다. 코스닥 지수도 26.52포인트(5.08%) 하락한 495.55를 기록했다. 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증시와 유럽 주요 증시가 3~5% 급락하면서 반등에 대한 실낱 같은 기대가 무너진 탓이다.



 전날 2018.47로 마감했던 코스피는 이날 개장 후 10분 만에 1920선까지 곤두박질쳤다. 사흘 동안 주식을 사들였던 개인이 불안감에 휩싸여 주식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묻지마’ 투매의 양상이 나타나며 주가는 추락했다. 연기금 등이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공포심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날 시장에서 개인과 외국인은 각각 5726억원과 4046억원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의 낙폭이 컸다. 삼성전자가 3.9% 급락해 80만원대를 내줬고 SK이노베이션(5.61%)과 S-Oil(7.77%) 등 화학주의 낙폭이 두드러졌다. 현대차도 2.39% 급락했다.

 블룸버그와 대우증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달 들어 한국에서 13억5200만 달러어치 주식을 팔아치웠다. 반면 대만(7억9335만 달러)과 인도(1억6353만 달러) 등 외국인 투자 비중이 높은 다른 신흥국 시장에서는 한국보다 매도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위기 때마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집중적으로 파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증권사 임원은 “한국은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라며 “아직도 외국인 투자가는 한국시장은 세계 경제가 악화되면 먼저 팔고 나가야 할 시장이라는 선입견이 있다”고 말했다. 윤지호 한화증권 투자전략팀장은 “ 무역 의존도가 높고 경기에 민감한 화학주 등을 외국인이 팔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시장도 하루 종일 불안감에 시달렸다. 역외시장 참가자와 국내 은행권이 달러를 집중적으로 사들이며 원화가치가 5주 만에 처음으로 1070원대까지 급락했지만 정부와 한국은행이 외환 시장 안정 의미를 나타내며 1067.4원에 거래를 마쳤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국내외 증시가 큰 충격을 받지 않는 한 원화가치는 1060~1070원대의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는 나흘째 급락(채권값 급등)했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이르자 안전자산인 채권으로 돈이 몰렸기 때문이다. 국고채 3년물은 전날보다 0.16%포인트 내린 3.61%를 기록했다.

  대우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시장이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는 만큼 추가 하락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종우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증시가 다른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올랐던 까닭에 영향도 더 크게 받는 것”이라 고 말했다.

 하지만 지나친 비관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 기업이 ‘어닝 서프라이즈’를 이어가는 데다 5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7월 중 새로 생겨난 일자리가 시장의 예상치(8만5000개)보다 많은 11만7000개에 달했기 때문이다. 7월 실업률은 전달보다 0.1%포인트 하락한 9.1%를 기록해 미국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글=하현옥·손해용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더블딥(재침체)=경기가 침체에서 벗어나는 듯했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현상. 경기 곡선이 ‘W’자 형태를 띤다. 1980년대 초 침체가 대표적인 예다. 2차 오일쇼크로 79년 말 침체에 빠진 미 경제가 80년 중반에 회복했다. 하지만 다시 경기가 하강해 침체에 빠졌다. 경제 정책 담당자들이 침체가 끝난 줄 알고 서둘러 긴축 정책을 썼을 때 주로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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