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우습게 만든 금융감독TF … ‘금피아’는 변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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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융감독 혁신을 위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가 별 성과 없이 사실상 종료됐다. 저축은행 사태로 민심이 들끓던 5월 초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구성된 지 석 달 만이다. 당시 사전예고 없이 금융감독원을 방문한 이 대통령은 금감원의 부정과 부패를 질타하면서 “이번 기회에 제도와 관행을 혁파하라”고 주문했었다.

 TF는 2일 국회 저축은행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혁신방안을 보고했다. 예금보험공사의 검사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동시에 금감원의 재량권을 줄이는 게 핵심이다. ‘낙하산’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금융감독원 퇴직자의 금융회사 취업 기준을 한층 깐깐하게 만들었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의 외부 민간위원을 4명에서 6명으로 늘리고, 금융위원회 임명직 위원들의 임기도 보장키로 했다. TF는 국회의 의견을 듣고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친 뒤 이달 중으로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두 가지 핵심 과제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 강도를 다루는 제재심의위원회를 금감원에서 금융위로 넘기고,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만을 떼내 독립적인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신설하는 문제다. TF 관계자는 “일부 민간위원의 반대가 완강해 ‘중장기 검토사항’으로 남겨두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선 당장 “혁신이 빠진 혁신방안”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날 국정조사특위 회의에서 한나라당 현기환 의원은 “개혁 대상인 ‘모피아(경제관료)’와 ‘금피아(금감원+모피아)’, 은행으로부터 돈을 받는 사외이사들이 모여 개혁안을 만든다는 게 과연 옳으냐”고 따졌다. 청와대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핵심 관계자는 “TF가 내놓은 안은 우리 기대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 반드시 들어가야 할 조치들이 빠져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도 “금감원이 자체적으로 마련했던 쇄신방안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초 TF는 혁신방안을 6월에 발표하겠다고 했다가 국회 국정조사가 있고, 금융업계 등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발표 시점을 이달로 늦췄다. 그 사이 민간위원인 경상대 김홍범(경제학) 교수가 “정부가 짜놓은 각본에 들러리 서고 싶지 않다”며 사퇴했고, 민간 측 공동위원장인 김준경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물러나 버렸다.

 이에 따라 TF 출범 초기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선 저축은행 사태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금융위 부위원장 등 금융 관료들이 TF에 대거 참가한 게 잘못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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