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비극의 희생자 61년 만에 명예회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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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덕 반민특위장

정부는 2일 ‘6·25전쟁 납북 진상 규명 위원회’(위원장 김황식 총리) 3차 회의를 열고 6·25전쟁 중 발생한 납북 피해를 공식 인정했다. 정부 당국자는 “1월 3일부터 전국 228개 시·군·구에서 6·25전쟁 중 납북 피해 신고를 받았다”며 “이를 토대로 각 시·도 실무위원회의 사실 조사와 소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이날 55명을 전쟁 중(전시) 납북자로 최종 결정했다”고 말했다.

 전시납북자는 남한에 거주하던 국민으로서 6·25 전쟁 중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 납북돼 북한에 억류 또는 거주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날 전시납북자로 인정된 55명은 반민특위위원장으로 활동한 김상덕 전 제헌의원 등 정치인 8명과 농민(13)·자영업자(8)·학생(5)·공무원(3) 등이다. 그동안 6·25전쟁 이후 납북자에 대해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과 보상은 있었지만, 전쟁 중 납북 피해자를 정부 차원에서 인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북한이 전시납북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데다 관련 자료도 부족해 공식적으로 전시납북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6·25전쟁 납북 진상 규명 위원회’ 활동의 근거법인 6·25 납북진상규명법(지난해 3월 통과)에는 금전적 보상이 별도로 규정돼 있지 않다. 위로금과 보상금 등을 지원받고 있는 3700여 명의 전후 납북자들과 달리 전시납북자들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시대 비극의 피해자로, ‘월북자 가족’ 취급을 받으며 60여 년 가슴앓이 해 온 이들에겐 큰 의미를 지닌다. 이미일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족회) 이사장은 “늦었지만 대한민국이 조국을 위해 싸운 이들을 잊지 않았다는 게 눈물 나게 기쁘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1950년 9월 납북된 부친의 명예회복을 위해 2000년부터 전시납북자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해왔다. 납북자들의 가족들은 "납북된 사람은 없고 자유의지로 북으로 온 사람들뿐”이라는 북한과 아무런 대답 없는 우리 정부 앞에서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결정은 진상 규명과 납북자의 명예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기념관 건립과 추모사업 지원은 물론 향후 북한에 대해 생사 확인과 이산가족 상봉 및 서신 교환, 유해 송환 등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시납북자가 10만 명을 웃돌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중에는 제헌 국회의원 50여 명, 2대 국회의원 27명, 언론인 230여 명 등도 포함돼 있다. 정부는 앞으로 일선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속적으로 신고를 접수해 납북 피해자를 심사·의결할 예정이다. 정부의 이런 진상규명 작업이 향후 납북자 생사확인 및 송환을 위한 북한과의 협상에서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고, 북한이 경직된 자세를 보이고 있어 실제 생사확인 및 송환으로 이어지기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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