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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반기업 정서’ 달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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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또 다른 승부수를 던졌다. 이번엔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사업 철수다. 중소기업과의 상생 일환이자 반기업 정서에 대한 정면 돌파다. [중앙포토]

삼성그룹이 말 많은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했다.

 삼성은 1일 삼성전자를 비롯한 9개 계열사가 가진 MRO 자회사 아이마켓코리아(IMK)의 지분 58.7%를 전부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IMK가 상장된 유가증권시장의 1일 종가(2만6400원)로 따져 557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대기업 중 MRO사업을 접는 곳은 삼성이 처음이다.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 부사장은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에 부응하고 비핵심 사업에서 철수해 그룹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매각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대기업계열 MRO에 밀려 설자리를 잃어가는 중소기업 MRO들에 숨통을 틔워 주려 철수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삼성 관계자는 “MRO가 대기업이 할 사업이 아니라는 각계 지적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화끈하게 화답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MRO에 대해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지난달 17일 기자간담회에서 “대기업이 이런 것 하라고 출자총액제한제를 푼 게 아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기업의 MRO사업을 직접 비판하진 않았으나 최근 국무회의에서 “정부부처들이 가급적이면 필요한 물자를 조달할 때 대기업(MRO)보다 중소기업을 통해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최근 높아지는 반기업 정서에 대해 정면 돌파를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IMK의 지난해 매출은 약 1조5500억원으로 지난해 삼성그룹 전체 매출(259조6000억원)의 0.6%다. 정부와 사회의 눈치를 보며 이런 사업을 끌고 가느니, 아예 정리를 함으로써 삼성 이미지를 높이는 게 더 이익이라는 판단을 이 회장이 했다는 것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MRO 사업 정리를 통해 정부에는 정책에 적극 협조하는 자세를 보여줬고 국민에게는 동반성장에 앞장선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됐다”며 “이는 일종의 국가·사회와의 공존 전략”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선언은 MRO 사업을 하는 다른 대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LG는 이날 보도 자료를 통해 “MRO에 관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여러 각도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므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는 대로 LG도 그 방향에 맞추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IMK의 구체적인 매각 시기와 방법, 인수자는 확정되지 않았다. 지분 가치가 5000억~6000억원에 이르는 만큼 몇 곳에 나눠 매각할 것으로 보인다. 이인용 부사장은 “여러 군데와 (매각) 얘기를 진행 중이나 공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중소기업중앙회가 회원사와 펀드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도로 한 외국 자본도 일부 지분 인수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IMK 지분을 팔아치운다고 해도 중소 MRO의 어려움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이 지분을 매각해도 IMK라는 대형 MRO업체는 그대로 남아있고, 삼성은 IMK와 계속 거래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삼성에서 떨어져 나간 뒤 IMK가 사업을 키우면 중소 MRO들은 경쟁에서 밀려 더욱 힘들어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권혁주·심재우 기자

◆MRO(Maintenance, Repair and Operation)=사무용품이나 공구같이 기업에서 쓰는 소모성 자재를 구매해 납품하는 사업. 그룹 계열사들이 각기 하던 구매를 모아 함으로써 비용을 낮추려는 목적으로 대기업들이 전담 회사를 세웠다.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삼성전자 회장
[現]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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