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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보호' 기치든 '화이트 해커'들 맹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실생활의 일들이 하나둘씩 인터넷 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 쇼핑은 물론 교육·정치·예술 등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터넷 안에서 또 다른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범죄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해킹은 가장 흔한 범죄이자 가장 심각한 범죄가 되었다.

''모든 정보의 공유''라는 해커의 신념

최근 세계 각국이 해커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독일에서는 작년 한햇동안 해킹 방지와 피해 복구비용으로 12조원을 쏟아부었다.

2600닷컴(www.2600.com)이라는 사이트는 오늘 어디가 해킹당했는지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뉴스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피해 규모와 상관없이 이미 해킹은 큰 범죄이자 주요 뉴스거리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해킹 방지를 위해 제시된 해결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해커는 해커가 잡는다''는 논리다. 이미 선진국에선 정부 차원에서 해커를 양성하고 있으며, 민간기구에서도 해커를 육성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설립된 데프콤(Defcom)은 화이트 해커들을 고용, 유럽의 금융업체·전자상거래업체 등 대기업의 시스템을 해킹하는 대가로 돈을 번다. 물론 기업들은 이를 통해 보안시스템의 취약점을 파악하게 된다. 인터넷 보안업체로 유명한 미국 ISS도 해커 보안부대인 타이거팀을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시도가 행해지고 있다. 시스템 보안 및 해커 전문양성 업체인 해커스랩(www.hackerslab.org)을 비롯, 한국해커단(members.xoom.com/rokhc), 대한민국해커군단(members.xoom.com/gooddew), 해커제로존(xzero.gazio.com) 등이 해커를 양성하는 곳이다.

이런 곳에선 해킹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해킹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다른 사용자의 컴퓨터에 있는 정보를 추출해 내는 ''백오리피스'', 인터넷에 접속된 컴퓨터를 스스로 찾아낸 뒤 해킹 가능한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는 ''워다이알러'', 남의 시스템에 들어가기 전에 실행시키면 중간 경로를 모두 지워 주는 ''모뎀 재머''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메일폭탄 제조기 ''카붐 3'', 다른 사람의 컴퓨터에 저장된 통신 아이디를 빼낼 수 있는 ''드리퍼'' 등 많은 해킹 프로그램이 공개돼 있다. 간단한 메뉴 조작만으로 강력한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과 주민등록번호, 신용카드번호를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 등 유사한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개발돼 있다.

해킹은 장난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지만, 상당수의 화이트 해커들은 나름대로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인터넷의 상업화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누구에게나 개방되고 공유돼야 할 인터넷 공간에 저작권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칸막이를 치고 있는 기업에 대한 경고를 보내는 것이다.

정보화사회에 대한 윤리강령과 신념을 전파한다는 것이 화이트 해커들의 생각이다. 이들은 ''컴퓨터에 대한 접근은 누구에 의해서도 방해받아서는 안된다'', ''모든 정보는 개방되고 공유돼야 한다'', ''컴퓨터를 통해 예술과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다'', ''컴퓨터는 모든 생활을 더욱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하버드대 물리학과 출신의 프로그래머 리처드 스톨먼은 이를 요약해 "모든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유돼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해커 세계에서 행동 준칙 1호로 통하고 있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네티즌의 70%가 해커가 되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커학원이라도 생기면 엄청난 인기를 얻을 것이다. 각종 해킹대회를 통해 유명 해커도 생길 것이고, 이들을 추종하는 상당수의 네티즌 또한 해커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윤리다. 해커들의 윤리의식이 부족하면 우리는 3차 세계대전을 인터넷에서 보게 될 것이다. 해커의 양산과 더불어 인터넷 윤리교육도 더불어 강조돼야 한다.

이정헌 뉴스보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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