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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도 못할 금단의 사과나무,하나님은 대체 왜 심으셨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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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호 05면

첫 키스의 무게는 얼마만큼일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메커니즘은 어떤 것일까? ‘눈을 감아도 보일 만큼 인간이 다른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 누구나 품고 있지만 누구도 깨닫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정체, 그 단서를 ‘금세기 최고의 로맨틱 뮤지컬 작가’ 조 디피에트로가 찾아나섰다. 조 디피에트로는 2010토니상에서 ‘멤피스’로 극본상과 베스트 뉴뮤지컬상을 수상한 인기 작가로 ‘아이 러브 유’ ‘올 슉업’ ‘톡식 히어로’ 등 중소형 롱런 뮤지컬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 그런 그가 인류 최초의 남녀관계, 즉 ‘사랑의 프로토타입’ 아담과 이브의 로맨스를 발칙한 상상력과 유머로 풀어 유쾌한 웃음 속에 그 본질을 발견하고자 한 것이 신작 뮤지컬 ‘폴링 포 이브’다. 더 이상 진부할 수 없는 소재인 아담과 이브의 스토리를 미니멀한 무대장치와 조명효과만으로 모던하게 담은 아이러니한 무대는 신에 대한 순종을 가르치는 우화를 인간 사이의 사랑에 관한 전설로 솜씨 좋게 비틀어낸 아이디어로 넘쳐난다.

뮤지컬 ‘폴링 포 이브’, 9월 1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

하나님은 정녕 남자일까? 그분은 먹지도 못할 금단의 사과나무를 뭐하러 심으셨나? 만약 아담이 사과를 따 먹지 않았다면?
세상에 수많은 사랑 이야기가 있지만 이 작품이 인류 최초의 고전 ‘창세기’에 주목한 것은 가장 원초적인 인간관계로 돌아가 그간에 쌓인 인간적 상식의 방해 없이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자 함이다. 남자와 여자로 수시로 모습을 바꾸는 양성적 존재인 하나님과 천사와 악마의 양면을 오가며 인간시험을 보조하는 천사들은 고정관념을 일단 벗어던지라며 개그콘서트를 진행한다. 하나님과 천사들의 농담스러운 진담이 오가는 한복판에서 아담과 이브가 던지는 사랑과 존재에 관한 의미심장한 질문들은 신 중심의 성경 이야기를 가볍지만 예리한 각도로 비틀어 인간의 마음에 확대경을 댄다.

세상 만물을 창조한 뒤 그 모든 것을 창조한 ‘목적’ 아담을 만들고 흡족하신 하나님. 그분은 아담에게 “네가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도 자랑스럽다. 아무것도 안 해도 좋으니 오직 순종만 하라”면서 ‘자유의지’와 함께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는 사과나무를 선물하는 ‘계획’된 모순을 실천한다. 호기심 많은 이브는 “왜 순종해야 하나?”를 묻고, 아담은 “순종하면 기분 좋고 인정받는 기분”이라면서도 “그것이 왜 좋고 중요한가?”라는 질문에는 “오 마이 갓!”을 외칠 수밖에 없다.

이브는 유혹에 굴복하고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는 사과나무라면 대체 왜 심었는가? 사과를 따 먹은 것이 잘못이라면 자유의지는 왜 주었는가?’ 이브는 혼란 가운데 에덴동산을 떠나고, 아담은 ‘순종’에 집착하면서도 이브만을 그리워하지만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없다.

‘계획’대로 사과를 먹지 않는 아담 때문에 하나님도 혼란스럽다. 이대로 ‘순종’을 지킨다면 인류가 시작될 수 없는 상황에 “쟤들 마음을 원래대로 돌려놓느니 원숭이를 진화시키는 게 빠르겠다”는 하나님의 개그 섞인 탄식은 원숭이를 진화시키지 않고 굳이 인간을 창조한 ‘계획’에 뭔가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암시한다.

세상이 고통스럽고 유한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이브는 에덴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지만 거친 세상에 머물기를 택한다. 성난 바다와 뜨거운 태양, 차가운 눈발의 생동하는 기운이 있는 곳. 이 세상이 바로 천국이라며. 이브의 마지막 선택에 아담도 결국 ‘순종’을 버리고 사과를 먹는다. 아니 먹어야만 하는 것이 정답이었고, 비로소 하나님의 모든 계획과 목적이 드러난다. 아픔과 그리움,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온갖 복합적인 감정이 솟구치며 ‘사랑’을 깨치게 되는 것. 인류의 시작을 가능케 한 두 글자다.

사랑의 감정이 태동한 순간, 인류 최초의 첫 키스가 성립한 순간을 상상해 보는 일은 사랑의 메커니즘에 무관심하지 않은 모든 이들에게 가벼운 즐거움이다. 가벼운 상상력 속에 성경을 비틀어 녹여낸 시도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종교적인 것도 아니다. 다만 인간이 공기처럼 잊고 사는 사랑의 무게를 가늠케 할 뿐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인류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일 만큼 위대한 일이며, 사랑한다는 것이 신이 부여한 인간다움 그 자체라는 것. 사랑의 의미를 잊은 채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 아담과 이브의 수많은 복제품들이 새삼 떠올려볼 만한 진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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