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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 영입해 골프시장 개척, 압축성장 했지만 1등 제품 없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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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호 13면

2003년 필 미켈슨은 이런 말을 했다. “타이거 우즈는 나보다 스윙 스피드는 빠른데 열등한 장비를 써 거리가 덜 나간다.”

성호준의 골프 진품명품 <23> 나이키와 타이거 우즈

우즈의 용품을 지원하는 나이키는 발끈했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나이키 볼을 쓰기 시작한 2000년 우즈는 4연속 메이저 우승(타이거 슬램)을 했고, 나이키 드라이버를 처음 잡은 2002년 마스터스와 US오픈에서 연속 우승했으며, 아이언을 바꾼 직후엔 월드골프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고 했다. 소송이라도 할 태세였다. 미켈슨은 “나이키가 열등하다는 말이 아니라 우즈가 뛰어나다는 말을 하려던 것”이라고 물러섰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말은 매우 강렬했다. 일부 골퍼들은 아직도 나이키는 열등한 클럽이라고 여긴다.

나이키는 ‘최고의 선수를 통한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을 마케팅의 모토로 한다. 테니스의 존 매캔로, 농구의 마이클 조던 등 각 분야의 독보적인 선수를 후원했다. 미국 회사인 나이키는 생소한 유럽 스포츠인 축구에서 브라질 국가대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바르셀로나 등을 후원하면서 축구의 골리앗인 아디다스와 맞먹는 회사로 단기간에 성장했다. 나이키는 스포츠 용품 업체 중 가장 거대한 브랜드이며 나이키라는 말 그대로 승리의 상징이 됐다.

우즈가 어떤 용품을 써도 골프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나이키도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디다스는 테일러메이드를 인수해 골프 시장에 들어왔는데 나이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인지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1984년부터 골프화와 의류를 만들었고, 96년 프로로 전향한 우즈와 계약하면서 본격적으로 골프 시장 점령을 위해 칼을 뺐다. 2000년 우즈가 나이키 공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볼 시장 점유율은 1%에서 6%로 성장했다. 우즈는 계속 우승했다. 나이키는 여자 타이거로 불린 미셸 위까지 잡았다.

다른 스포츠라면 이 정도에서 게임은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키는 브랜드의 위용에 걸맞지 않게 용품 시장에 강한 임팩트를 끼치지 못했다. 드라이버에서도, 아이언에서도, 웨지에서도, 퍼터에서도, 볼에서도, 신발에서도 1등이 없다.

골프는 다른 스포츠와는 다른 게임이었다. 진입 장벽이 높다. 골프용품에는 약 1200개의 특허가 걸려 있다. 나이키는 연구개발에 큰돈을 쓰지만 후발 주자로서 특허권을 피해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 게 만만치 않다. 새로운 것을 만들면 되지만, 용품 기능이 지나치게 발전하면 골프에 나쁘다고 생각하는 규제기관에서 달가워하지 않는다.

나이키는 기본적으로 의류와 신발 회사였다. 농구든 축구든 야구든 신발과 옷 정도다. 정상급 회사의 제품에 대단히 뛰어난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공은 모두 똑같은 것을 써야 한다. 그러나 골프는 20개에 가까운 용품을 사용자가 마음대로 결정해서 쓸 수 있다. 뛰어난 목수는 장비 탓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진지한 골퍼는 용품에 더욱 예민하다.

나이키의 마케팅 능력도 골프에서는 잘 먹히지 않았다. 2006년 개발한 사각 드라이버(사진)는 혁신적인 상품으로 꼽힌다. 최경주가 쓰면서 알려진 이 드라이버는 공이 가운데 맞지 않아도 똑바로 가는 직진성에서 타원형의 경쟁 제품보다 뛰어나다. 그러나 나이키는 사각 드라이버의 흐름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보고, 서서히 발을 빼고 있다. 나이키처럼 강력한 마케팅 능력을 가진 회사가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 놓고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골퍼들은 축구나 농구팬보다 보수적이어서 자신이 쓰던 브랜드에 대해 충성심이 높다. 우즈의 이미지 저하와 부진 앞에서 나이키는 새로운 고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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