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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사법 부조리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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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권석천
사회부문 차장

오늘로 Y가 구치소에 들어간 지 일주일째다. 그러니까 그가 처음 법정에 선 건 5년 전(2006년 5월)이었다. 영장실질심사.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판사는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고 했다. 같은 해 10월 검찰이 Y에게 주가조작 혐의를 추가해 영장을 재청구했다. 결과는 역시 기각. 검찰은 “한마디로 코미디”라고 했다.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영장을 다시 보냈다. 영장은 그렇게 검찰청과 법원 사이를 몇 번씩 오갔다.

 두 달 뒤 기소된 Y는 2008년 2월 결국 법정구속된다. 징역 5년이 선고된 것이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2심은 주가조작 부분에 무죄를 선고했다. Y는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운명의 장난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2년9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난 3월 대법원은 유죄로 뒤집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고법 재판부가 선고를 앞두고 “도주 우려가 있다”며 그를 법정구속한 게 지난주 목요일이었다. 네 번의 영장 청구→네 번의 기각→법정구속→석방→법정구속. 절차상 법 테두리를 벗어난 대목은 없었지만 왜 이렇게 전개돼야 했는지 수긍이 가지 않는다.

 이쯤 되면 눈치를 챈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Y’는 유회원(61)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다. 그가 유죄인지, 해외 투기자본의 대리인인지 여부를 떠나 법원과 검찰이 지난 5년간 유씨 사건에서 보여준 모습은 부조리극에 가깝다. 재판의 미로 속을 헤매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소송』을 연상시킬 정도다.

 유씨를 변호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한 인간의 자유가 달린 사건을 다루는 솜씨가 이래선 안 된다는 얘기다. 수사와 재판이 보다 빠르게, 보다 예측 가능하게 진행됐다면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소액주주들이 주가조작에 따른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이 일찍 열릴 수도 있었다. 외환은행 매각 문제도 쉽게 풀렸을 가능성이 크다.

 3심제 아래에서 1, 2, 3심의 결론이 서로 다른 걸 문제 삼을 수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무조건 대법원까지 가봐야 결론을 알 수 있다’는 게 소송의 기본 원칙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어찌하여 유씨 사건이 대법원에서 3년 가까이 묵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더욱이 법원-검찰 간 감정 싸움이 상처를 덧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에 대한 구속영장이 핑퐁처럼 오가던 당시 양쪽은 대법원장과 검찰총장까지 나서서 불구속 재판 원칙을 놓고 앙앙불락하고 있었다. 이런 갈등의 수레바퀴에 깔린 게 비단 이 사건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서초동 법조타운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 검찰총장과 대법원장이 한 달 간격으로 새로 임명된다. 어떻게 수사와 재판에서 법적 안정성을 보장할지, 사건 처리 속도를 높일지, 기관 간 인식차를 이성적으로 좁힐 방법은 없는지 사법 시스템 전반에 대한 재점검, 그리고 가슴에서 우러난 반성이 필요하다. 굳이 ‘사법개혁’이란 이름을 빌리지 않아도 좋다. 신속히 타당한 결론을 내려준다는 사법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며, 뒤늦은 치유는 흉터를 남긴다.

권석천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