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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세력 “이슬람 이민자들, 일자리·연금 뺏아가” 증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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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3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의 돔키르케 교회 바깥에 설치된 추모장소에서 젊은이들이 애도하고 있다. 22일 오슬로 정부청사 밀집지역과 우퇴야 섬에서 일어난 연쇄 테러로 최소 93명이 숨졌다. 한 극우주의자가 벌인 끔찍한 테러에 평화의 나라 노르웨이 전체가 슬픔에 빠졌다. [오슬로 AFP=연합뉴스]


지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열린 사회’로 평가받던 노르웨이는 기독교 원리주의자 청년의 동시 테러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잔혹한 테러가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 등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평범한 자국 청년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점에 노르웨이는 물론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현지 언론은 테러범인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이 유럽에서 급증하는 이슬람계 이민에 반발하는 극우주의에 빠져 있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스스로 애국주의자라는 자기도취에 빠진 그에게 이민에 관용적인 집권 노동당이 테러의 표적이 된 것이다. 그래서 정부청사에 폭탄 테러를 가하고, 노동당 청소년 캠프에서 총기를 난사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23일(현지시간)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가 집권 노동당 청소년 리더인 에스킬 페더슨을 꽉 끌어안고 있다. 스톨텐베르그 총리는 총기 난사 사건의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생존자들이 머물고 있는 호텔을 찾았다. [선볼드 로이터=뉴시스]

 미 뉴욕 타임스(NYT)는 24일(현지시간) “이슬람계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유럽 우익세력이 폭력적인 개인 테러리스트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유럽과 미국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슬람계 유입에 불만을 가진 국내 극우세력에 대해 경계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노르웨이 등 북유럽은 유럽에서 극우세력의 영향력이 가장 약한 곳이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이슬람계 이민자와 난민이 급증하면서 이슬람계 이민사회와의 대립이 표면화됐다. 현재 노르웨이 인구 486만 명의 11%가 이민자들이다. 1980~90년대 활동했던 네오나치 등 극우세력은 ‘반이슬람, 이민 배척’을 기치로 다시 결속했다. 제2당인 진보당은 “노르웨이는 남녀 평등의 나라이기 때문에 다른 사고를 가진 (이슬람계) 이민자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노골적인 반이민 정책을 표방했다.

 유럽 각국은 70년대부터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이슬람계 이민을 적극 받아들였다. 2008년 유럽연합(EU) 27개국은 중동·아프리카에서 380만 명의 이민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경기 침체로 실업률이 상승하고 재정도 악화되면서 ‘이민자들이 일자리뿐만 아니라 실업보험과 연금까지 빼앗고 있다’는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

 이슬람 커뮤니티가 기독교를 전통으로 하는 유럽 사회와 문화·종교적 마찰을 빚기도 한다. 6월 말 네덜란드가 가축의 실신 뒤 도살을 의무화하자 이슬람계가 ‘이민 배척의 수단’이라며 반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프랑스·벨기에가 올해 들어 무슬림 전통 의상인 니캅과 부르카 착용을 금지한 데 이어 스페인·네덜란드도 유사한 법률의 제정을 준비 중이다.

 이 같은 우경화 분위기는 극우정당의 세력 확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지난해 총선에서 부르카를 두른 이슬람 여성이 연금 수급을 위해 달려가는 내용의 광고캠페인을 벌인 민주당이 20석을 획득, 사상 처음 원내에 진출했다. 4월 핀란드 총선에서는 민족주의 정당이 의석을 6배로 늘렸다. 덴마크의 인민당은 2007년 총선에서 14%의 지지를 얻었고, 오스트리아 극우정당들은 총 30%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주류사회와 이슬람계 이민자들과의 갈등이 커지면서 메르켈 독일 총리,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최근 잇따라 다문화주의의 종식을 선언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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