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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궁금한 건 ? 어떻게 만들었나 아닌 어떻게 이야기 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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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호 04면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2000년대 들어 새로운 경향이 대두했다. 단편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신진 크리에이터들이 만든 작품성 있는 저예산 애니메이션이 수십 개의 중소 상영관을 돌며 장기 상영되고, DVD와 블루레이를 구매하는 매니어층을 몰고다니는 구조다. 이러한 흐름의 선두에 신카이 마코토(新海誠·38) 감독이 있다. 1인 제작 시스템을 개척해 재패니메이션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부상한 이름이다. ‘빛의 마법사’라 불릴 정도로 독보적인 빛의 묘사, 일상적 소재와 실제 풍경을 극사실적으로 재현한 배경 속에 시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감성 애니메이션’이 그의 특기다.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상실’. 시간과 거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변해가는 인간의 내면, 그 ‘상실’의 상황에 대처하는 고정되지 않은 가치관을 보여준다. 그는 왜 ‘상실’에 집착하고, 팬들은 왜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가. 최신작 ‘별을 쫓는 아이’가 2011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7월 20~25일)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최신애니 ‘별을 쫓는 아이’ 들고 SICAF 찾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

-성인 관객에게 어필하는 개성적인 스타일로 사랑받아 왔는데, 이번 작품에선 작화 스타일이 크게 바뀌었다.
“지브리 작품이 연상 될 것이다. 지브리 스타일이란 원래 ‘빨강머리 앤’이나 ‘엄마 찾아 삼만리’같은 TV 세계명작극장의 그림체로, 일본의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작화스타일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부터 만났던 친숙한 그림이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매니어나 내 작품을 접했던 관객이 아니라도 접근하기 쉽게 입구를 넓히려 한 의도다.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즐길 수 있도록 판타지 어드벤처물로 기획해 외국인도 공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 달라졌을 뿐, 안에 담긴 내용물은 이전과 다르지 않다.”

-1인 제작의 저예산 독립애니로 유명해졌는데, 이번엔 지브리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스케일이다. 자본이 많이 들었을 것 같다.
“3억 엔(약 40억원)이 들었다. 전작의 두 배 정도다. 통상 5억~6억 엔 정도 들이고 지브리라면 10억 엔은 들이는데 비하면 적게 든 편이다. 다른 스튜디오에 비해 스태프가 적기 때문이다. 15명 정도의 핵심 멤버가 소수 정예로 많은 것을 소화한다. 크레디트를 보면 내 이름도 여러 번 나온다. 작화의 경우도 보통 여러 명이 이름을 올리지만 우리는 한 명이 담당하는 식으로 각 섹션을 맡는 스태프가 적다.”

-고독이나 상실감 등 안타까운 감성에 집착하는 이유는.
“기쁜 일보다는 슬픈 일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기쁜 일이라면 행복한 기분에 젖어 자신이 왜 행복한지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슬프면 자기 내면도 들여다보게 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깨달음이나 배움을 얻는 일이 많지 않은가. 하지만 감독으로서 어떤 메시지를 고정시키고 싶지는 않다. 이번 작품에도 죽은 이에 대한 미련을 털어내는 가치관과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이 공존한다. 같은 문제에 부딪혀도 대답은 제각각이지만, 고독을 품고 살기를 택한 사람까지 긍정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1Q84’의 경우는 오히려 당신의 ‘초속5센치미터’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이번 작품을 제외한 내 작품은 모두 독백중심으로 전개되는데 하루키 문장의 영향인 것 같다. 또 하루키도 말하자면 상실을 테마로 해 온 작가니 테마적인 영향도 있는 것 같고, 평행 세계에 대한 관심도 공통된다. 내가 센다이에서 태어났다면 쓰나미에 쓸려갔을지도 모르는 것처럼 ‘만약에 이랬더라면 이랬을지 모른다’는, 아주 조금 상황이 다른 자신을 그려봄으로써 드러나는 본질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키의 ‘1Q84’라는 가공세계도 마찬가지다. 1984년의 가공의 역사를 그림으로써 진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을 발견하고자 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루키 같은 대작가가 내 작품을 보았을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일본사회에서 지진이나 커다란 사회적 사건의 영향을 같이 받기도 하면서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이쿠’를 연상시킨다고 할 정도로 연출방식이 매우 시적이다. 문학을 전공한 영향인가.
“독백을 중심으로 마음의 목소리에 맞춰 압축적으로 영상을 전개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번 작품은 소년소녀 모험스타일이긴 해도 다른 세계에 가면서도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자신의 내면이다. 단지 외로웠을 뿐이라든지 죽은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즉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여행이기 때문에 그런 내면을 보는 것이 시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1인 제작으로 성공한 이후 크리에이터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저예산으로도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팁이라면.
“애니메이션은 소설과 달리 기술이 필수다. 소설은 문장이니까 누구나 쓸 수 있기에 그 안에 무슨 메시지를 담을지를 우선한다. 애니는 기술이 없으면 만들 수 없기에 만드는 사람은 기술에 치우치기 쉽다. 그러나 보는 사람은 기술은 아무래도 좋고 메시지를 중시한다. 훌륭한 기술을 전면에 내세워 보이기 위한 애니가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해 무엇을 이야기하는가가 중요하다. 관객의 존재를 잊지 않고 기술과 메시지의 균형을 잡는 것은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다.”

-일본 애니가 일본 영화보다 국내외에서 더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뭘까.
“예부터 우키요에 같은 익살스럽게 단순화시킨 그림을 즐기는 민족성 덕분이란 말도 있고, 일단 현 시점에서 만화문화가 두텁기 때문이라고 본다. 매주 ‘주간소년점프’ 같은 잡지에 수천 편의 만화가 발표되는데, 그중에서 기적처럼 재미있는 것을 픽업해서 애니로 만들곤 하니 우선 유리한 상황이다. 또 일본에는 만화와 애니가 어린이용이라는 전제가 전혀 없다. 내 경우도 만화와 애니를 쭉 보면서 자랐고 성인이 되어 또 새로운 것을 만들고 있으므로 그만큼 표현의 폭이 넓어졌다고 본다. 세대가 변해가면서 점점 세계관이 깊고 넓은 것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한류붐인데 일본인들이 한국 애니메이션도 보는지.
“K팝과 한류드라마, 영화 붐이지만 애니메이션은 보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알고 보니 많이 만들지 않는다고 하더라. 이번에 ‘소중한 날의 꿈’을 보았는데, 기술도 상당하고 이 정도라면 세계에도 통하는 작품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내용면에서는 한국 애니에 한국 영화가 갖는 복잡함이 없다는 인상이다. 조금 더 복잡한 무언가가 있다면 감정이입이 잘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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