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단 하루만 당신 인생을 전시해 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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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만화가 박재동씨가 고등학교 재수 시절 그린 장편만화를 관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미술에 특별한 소질을 갖고 있음-.’

 만화가 박재동(59)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국민학교(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남은 문구다. 부산 서사국민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적어 놓은 것이다.

 박 교수는 이 생활기록부 외에도 초등학교 때 그린 불조심 포스터, 유년기를 형성한 만화책 ‘코주부’ ‘삼국지’ 표지, 고등학교에 떨어지고 재수할 때 계단에 구부리고 앉은 친구를 그린 우울한 그림, 대학생 때 그린 누드화, 여고생들과 운동장에 물 뿌려 커다란 그림을 그렸던 미술교사 시절 사진, 신문 만평 등을 내걸었다.

 14일 서울 창성동 갤러리 자인제노 3개 벽면이 이런 그림들로 꽉 찼다. “단 하루 동안 내 인생을 전시하란다. 이런 스타일의 전시는 처음이다.” 당사자인 박재동씨조차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시장 한가운데 동네 수퍼마켓 앞에 있을 법한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종일 그림을 그렸다. 그게 곧 그의 인생이었으므로.

 갤러리 자인제노에서 ‘자∼인제노세! 고무밴드 모둠전에서’라는 제목의 이색 전시가 열리고 있다. 기타리스트 고무밴드 김영주(51)씨가 한 달간 무용가 서은정, 의사 전신철, 문화기획자 윤재환, 도예가 한갑수 등 매일 다른 게스트를 초청해 그의 인생을 전시토록 한다.

 오후 7시부터는 고무밴드의 공연을 곁들인 전시 주인공의 토크쇼가 진행된다. 노래를 하든, 춤을 추든, 손금을 봐 주든, 그냥 가만히 앉아 있든 그날 전시는 게스트의 몫이다. 갤러리의 한쪽 면은 도자기, 음반, 저서 등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이들이 내놓은 작품을 판매하는 ‘고무밴드 점빵’이 됐다.

 전시를 기획한 김영주씨는 “전시의 틀과 형식을 다 깨버리고 예술가 개개인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며 “판매 수익금은 장학재단 등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참여작가들의 일정은 갤러리 홈페이지(zeinxeno.kr) 참조. 8월 10일까지. 02-737-5751.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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