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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올렸다 내렸다' 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단 한방울도 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지요.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 같이 석유가 많이 나는 중동 국가에서 사다 쓰고 있답니다.

정유회사들은 이 석유를 가공해 우리가 쓰는 휘발유.등유.경유.벙커C유 등을 만드는 것이지요. 최근 국제 시장에서 석유 값이 오른다고 해서 다들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수입한 석유로 만든 우리나라의 휘발유 값도 당연히 올라가겠지요. 그런데 윤아가 지난주말 아빠랑 주유소에 가보니 휘발유 값이 그대로 더라고요. 국제 원유 가격이 한창 가파르게 오른 두달전이나 지금이나 휘발유 값은 별 차이가 없거든요. 정유사나 주유소에서 손해 보고 싸게 팔리도 없는데, 참 이상하지요.

그 비밀은 바로 휘발유 값에 붙는 세금에 있습니다.

이 세금을 올리거나 내려서 사람들이 휘발유를 살 때 내는 돈을 그전과 별 차이 없이 만드는 것이지요. 우리가 치르는 물건 값에는 대부분 세금이 들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세금으로 부가가치세가 있지요. 으레 물건 값에는 이 부가가치세가 붙어 있다고 생각하세요. 보통 물건값의 10%로 보면 됩니다. 이 10%를 바로 세율이라고 합니다. 물건 값에는 세금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과 세율이 무엇인지를 알면 이야기가 쉬워집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가수 이정현의 노래 '바꿔' 가 담긴 컴팩트디스크(CD)를 만드는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가 CD를 제작해 음반 가게에 내놓으면 우리는 그곳에서 CD를 삽니다. 물론 회사는 CD를 만드는 데 들어간 돈(원가)에 이윤(마진)을 포함한 값으로 내놓겠지요. 이것을 공장도가격이라고 합니다. 이를 1만원이라고 할까요. 그렇다고 우리가 이 돈만 내면 CD 한장을 살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답니다.

음반 가게 아저씨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 이윤을 또 붙이지요. 그런데 이것까지 생각하면 복잡하니까 일단 음반 가게 아저씨는 이윤없이 그냥 우리한테 CD를 판다고 생각하지요. 그래도 공장도 가격에는 살 수 없답니다.

정부가 세금을 매기기 때문이지요. 그 세금이 바로 부가가치세랍니다. 공장도 가격의 10%인 1천원를 세금으로 더 내는 거지요. 결국 우리는 회사에서 정한 값(1만원)에 세금(1천원)을 합친 1만1천원을 주고 CD 한장을 사는 거지요. 우리는 CD 한장 값이라고 1만1천원을 내지만 그중에는 세금 1천원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휘발유 값에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게 세금이 매겨져 있답니다. 부가가치세 말고도 교통세라는 게 더 있어요. 휘발유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주로 쓰는 연료니까 차가 막히는 등 교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겠다며 정부가 만든 세금이랍니다.

실제로 휘발유 값을 어떻게 매기는 지 볼까요. 윤아는 지난 13일 아빠랑 주유소에서 1ℓ에 1천2백43원씩 계산해서 3만원 어치를 차에 넣었답니다.

정유회사가 외국에서 석유를 사다가 가공해서 휘발유를 만드는 데 들어간 돈을 포함한 공장도가격은 3백35원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교통세가 6백원이 붙습니다. 그 다음 부가가치세 등 다른 세금 2백13원을 더 매깁니다. 마지막으로 주유소의 마진 95원이 붙어 우리가 사는 휘발유 값이 나옵니다.

이 때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게 있답니다. 6백원인 교통세는 언제나 같은 금액을 매기지 않고 그때 그때 바뀐답니다. 이처럼 수시로 바뀌는 세금을 탄력세라고 합니다.

보통 세금을 매길 때 세율은 법으로 정합니다. 이것은 여간해서 바꾸지 않는답니다.

법을 바꾸려면 국회를 열어야 하는 데 이게 쉽지 않거든요. 부가가치세도 처음 세율을 10%로 정한 뒤 바꾼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통세는 다릅니다. 처음 세금을 만들 때부터 기본세금으로 6백91원을 받기로 정했어요. 왜 하필 기본세가 6백91원일까요. 이것은 그전에 '공장도 가격의 몇%' 로 따져 받던 세금을 1996년부터 '몇원' 하는 식으로 정하면서 95년까지의 세율로 매겨진 세금을 그대로 적용한 뒤 몇차례 올린 것이랍니다.

정부는 또 필요하면 기본세금 6백91원보다 위 아래로 30% 범위안에서 적게 또는 더 받을 수 있도록 했지요. 다시 말하면 6백91원보다 30% 적은 4백84원에서 30% 많은 8백98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얘기지요.

왜 이렇게 했을까요. 석유 값이 움직이는데 따라 우리나라 휘발유 값이 급변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랍니다.

석유 값이 올라 휘발유 값의 공장도 가격도 올려야 할 상황이 되면 그만큼 교통세를 낮춰야 우리가 사 쓰는 휘발유 값이 변하지 않겠지요. 그 반대라면 세금을 올려야 값이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3월 휘발유 값을 정할 때 실제로 이렇게 했답니다. 지난달 국제 유가가 크게 올랐지요. 그래서 정유 회사가 휘발유를 만드는 원가도 올라갔지요. 정유 회사들 얘기로는 1월에 1ℓ를 만드는 데 2백99원이 들었는데, 2월에는 3백35원이 됐다는 거예요. 공장도 가격이 36원 올랐으니까 우리가 휘발유를 사는 값도 36원이 더 올라야 했겠지요.

그러자 정부가 지난달 중순 교통세를 6백30원에서 6백원으로 낮췄어요. 공장도 가격이 오른 만큼 세금을 줄여준 셈이지요. 그래서 휘발유 1ℓ를 사는 데 드는 돈은 이번달에도 1월초의 1천2백43원과 같아진 것이랍니다.

그러면 정부는 왜 세금을 줄여가며 휘발유 등 기름 값이 오르지 못하게 하는 걸까요. 나라 경제가 움직이는 데 기름을 쓰는 곳이 워낙 많기 때문이지요. 자동차를 타려면 휘발유를 넣어야 하고, 공장에선 기계를 돌리는데 벙커C유를 많이 쓰지요.

그런데 이게 올라 보세요. 공장에서 그전보다 기름 값이 더 들어 자연히 물건을 만드는 원가가 높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손해보면서 물건을 팔 수 없는 기업이 물건 값을 더 비싸게 받을 수 밖에 없는 거지요. 다른 나라 공장에서 만든 물건보다 더 비싼 우리 물건을 외국 사람들이 사줄까요. 수출이 잘 안되겠지요. 상황이 심하면 공장이 문을 닫는 일도 생길 거예요. 나라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얘기지요.

반대로 국제 유가가 아주 쌀 경우를 생각해 볼까요. 값이 싸면 너도 나도 기름을 함부로 쓸 지도 모르지요. 학용품 값이 지난 학기의 절반으로 떨어지면 같은 돈을 부모님한테 받아도 더 많은 학용품을 살 수 있잖아요. 또 지난 학기에는 비싸서 사지 못했던 학용품도 사겠다고 생각할 거예요. 휘발유도 마찬가지예요. 97년말 국제통화기금(IMF)에서 큰 돈을 빌렸을 때 휘발유 값이 비싸지니까 자가용을 굴리지 않던 사람들이 값이 싸진 요즘에는 자동차를 몰고 나와 길이 막히잖아요.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가 이러면 될까요.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할 때 정부는 세금을 높여 휘발유 등 기름값이 너무 싸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지요. 값을 적당히 비싸게 매겨 함부로 낭비하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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