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급등, 원화 강세 ‘오늘의 숙제’ … 20년 전 ‘6공 경제’에서 답을 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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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장규 고문

‘정치권력과 재벌의 충돌, 공정·형평의 슬로건과 포퓰리즘의 만연, 물가 급등과 원화 강세, 사회적 약자들의 욕구 분출…’.

 지금부터 20년 전, 노태우 정부 시절 얘기다. 어쩌면 이렇게 현재 경제상황과 엇비슷한지. 역사적 전환기에는 그렇게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나 보다.

 한국은 보기 드물게 경제 발전과 정치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했다. 1960년대 시작된 경제 발전의 도도한 물결이 민주화의 거센 물결과 맞부닥쳐 본격적으로 뒤엉켰던 게 바로 노태우의 6공화국(88~92년) 때였다. 6공 시절의 갈등과 좌절, 극복을 통해 만들어진 경쟁력 DNA는 지금도 살아 숨쉰다.

 하지만 그 시절 한국 경제에 무슨 일이 있었고, 뭘 잘하고 못했는지를 얘기해주는 자료나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노태우 전 대통령 때문일 게다. 노 전 대통령은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꼽힌다. 그는 ‘물태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우유부단했고, 집권 말기엔 수천억원의 비자금까지 챙겼다.

 『경제가 민주화를 만났을 때』는 6공화국의 경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중앙일보 편집국장과 경제대기자를 지낸 이장규 하이트진로그룹 고문이 1995년 현장 기자 시절 김왕기·허정구·김종수·남윤호 등 동료 기자와 함께 썼던 『실록 6공 경제』를 대폭 손질해 다시 쓴 것이다. 저자는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한 시절의 경제 흐름과 정책 전반이 외면당하고 비판받을 순 없다”며 “보다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쪽으로 6공 경제를 재조명 했다”고 밝혔다.

 노태우가 잘했던 일로 이 책이 부각시킨 게 바로 북방정책과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다. 소련에 준 30억 달러 경협자금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들이 러시아와 중국 시장을 선점할 길을 닦아준 게 바로 6공이었다고 평가한다. 또 당시 거셌던 반대 때문에 영종도 신공항, 경부고속철도, 서해안고속도로 건설과 같은 SOC 투자의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이 책은 반문한다.

 저자는 “당시의 민주화 열기를 감안할 때 노태우 같은 인물이 어찌 보면 적절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대세를 따라가는 우유부단한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더 큰 비용을 치렀을 수도 있었다는 해석이다.

 이 책은 한 편의 경제 드라마 같다. 금융실명제 논의, 토지공개념 탄생, 200만 호 신도시 건설, 재벌 부동산 강제매각 조치, 노동자 권익 신장, 제2 이동통신 특혜 시비 등의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다만 정부 정책과 인사 문제 등을 중심에 놓고 스토리를 전개하다 보니 기업 경영의 현장과 시장에 대한 앵글이 상대적으로 좁았다. 그러나 한국 경제사 기록의 큰 구멍 하나를 메우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정치와 역사, 경제를 아우르는 안목을 키우고 싶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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