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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 ‘스톱’ … 베이너·펠로시 ‘야구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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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4일 밤(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내셔널스 파크 야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102년 전통의 민주-공화 의원 야구대회에서 8-2로 이긴 민주당 의원들이 함박 웃음을 짓고 있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앞줄 오른쪽 둘째) 왼쪽에 트로피를 든 이가 마이크 도일 의원, 펠로시 오른쪽이 주장을 맡은 조 바카 의원이다. [미 의회 전문지 롤콜(Roll Call)]

14일 오후 5시43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여야 간 정부부채 한도 증액 협상은 한 시간 만에 끝났다. 전날처럼 오바마가 자리를 박차고 회의장을 나가버린 때문이 아니었다.

 오바마도 양보할 수밖에 없는 미 의회의 중요 행사가 이날 밤에 있었다. 존 베이너(공화) 하원의장과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서둘러 백악관을 나와 찾은 곳은 워싱턴 내셔널스 파크 야구 스타디움. 102년 전통의 민주-공화 의원 야구대회가 열리는 장소다. 1909년 미 의회는 잦은 정쟁(政爭)과 대립 속에서도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인 야구를 통해 동료애를 다지고 초당적 협력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취지로 의원 야구대회를 시작했다. 입법을 둘러싼 갈등으로 몇 차례 경기가 취소되는 곡절이 있었지만 전통은 이어졌다. 특히 올해는 경기가 매년 정례화된 1962년 이래 50주년을 맞는 행사였다.

 오후 6시45분. 경기 시작 20분을 앞둔 시각 스타디움엔 의원들의 경기를 보러 온 미국인들로 북적였다. 1루 쪽 스탠드는 공화당 상징인 코끼리, 3루 쪽은 민주당 상징인 당나귀 그림으로 뒤덮였다.

 코끼리팀과 당나귀팀 의원들의 유니폼은 모두 각양각색. 제각기 자신의 지역구 프로 야구팀 복장을 착용했기 때문이다. 경기 시작 전 한 명, 한 명 선수가 호명될 때마다 박수가 쏟아졌다. 1루 쪽 스탠드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존 베이너 하원 의장이 오렌지색 티셔츠와 카키색 반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넥타이를 푼 에릭 캔터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가 뒤를 이었다. 5분여 뒤 홈 플레이트 뒤쪽 중앙 스탠드에 하원의장 출신의 펠로시 민주당 원내대표가 등장했다. 펠로시는 경기 내내 현장을 지켜며 “민주당, 민주당”을 외쳐댔다.

 경기는 기대 이상의 수준급이었다. 제대로 된 야구 경기였다. 선수들의 나이는 30대에서 60대까지로 다양했지만, 실책은 딱 한 번뿐이었다. 공화당 내야수들은 병살 플레이를, 민주당 중견수는 멋진 호수비를 두 차례나 보여줬다.

 경기 결과는 민주당의 압도적 우세였다. 이날의 영웅은 민주당 초선 의원 세드릭 리치먼드(38·루이지애나주)였다. 대학야구 선수 출신의 강인한 흑인 리치먼드는 투수를 맡아 6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결국 7회까지의 경기에서 8대 2로 민주당이 이겼다.

 경기 종료 후 장내 해설자가 “지난해 중간선거에선 공화당이 이겼지만 오늘은 민주당이 이겼다. 이제 승부는 1대 1”이라며 이날 경기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펠로시는 트로피를 들고 흔들며 자축했다. 공화당 의원들도 박수를 보냈다.

 민주당 린다 산체스 의원은 경기 후 언론과의 현장 인터뷰에서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에 대해) 달콤한 복수”라고 말했다. 미시간주 출신의 50대 관중 밥 리치는 “의원들의 동료애가 상호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져 정부 부채협상에 진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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