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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부산에 밀릴 뻔 … 박용성이 막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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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18년 겨울올림픽의 강원도 평창 유치 드라마 뒤엔 소리 없이 제 몫을 해낸 ‘숨은 조연’들이 있었다. 정부가 평창 유치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2009년부터 지난 3월까지 청와대에서 이 일을 담당했던 함영준(55·사진) 전 문화체육비서관도 그중 한 명이다. 평창올림픽 유치위원회 부위원장이기도 한 함 전 비서관이 중앙일보 기자에게 올림픽 유치 성사의 뒷얘기를 털어놨다.

 ◆‘부산의 여름’에 밀릴 뻔한 ‘평창의 겨울’=평창의 라이벌은 독일 뮌헨, 프랑스 안시에 앞서 부산이었다. 2020년 여름올림픽 유치를 추진하던 부산이 정부 지원을 놓고 경쟁했기 때문이다. 부산 출신 국회의원들은 “올림픽은 겨울보단 여름”이란 논리를 확산시켰다. 이 때문에 평창 지원을 결정하려던 청와대 회의가 일주일 연기되기도 했다.

 그때 박용성 대한올림픽위원회(KOC) 회장이 SOS 구조신호를 함 전 비서관에게 보냈다. “강원도는 10년을 공들였다. 정부가 부산을 택하면 강원도가 들고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함 전 비서관은 정정길 당시 대통령실장에게 달려가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평창 지원을 결정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유치위원장 좀 맡아주세요”=KOC는 당초 다른 대기업 회장에게 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의사를 타진했으나 “회사일 때문에 힘들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곤란해하던 KOC 앞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내가 해보겠다”며 ‘구원투수’를 자임해 줬다고 한다. 활동 초기 조 회장과 관련해선 “조용한 성격의 조 회장이 국제 스포츠계를 장악할 수 있겠느냐”는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재계 사정에 밝은 이명박 대통령은 조 회장 취임 소식을 듣고는 “잘 뽑았다”고 기뻐했다고 한다. 실제로 조 회장은 위원회를 맡은 22개월 동안 열정적으로 겨울올림픽 유치에 매달렸다. 그가 유치위원장으로서 다닌 해외출장의 이동거리만 지구 13바퀴였다.

 ◆여론이 풀어준 ‘사면 고민’=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평창 유치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 회장이 IOC 위원으로 뛸 수 있었던 건 2009년 말 이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스포츠계는 일찌감치 이 회장의 사면을 바랐지만, 청와대로선 선뜻 앞장서기 힘든 상황이었다. 먼저 나섰다간 정치적으로 공격받을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서히 이 회장을 사면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후 강원도와 스포츠계가 발벗고 사면을 위해 뛰었다. 청와대 민정라인은 이후에 이 회장 사면 검토에 착수할 수 있었다.

 ◆MB, 유치 위해서라면 뭐든 “OK”=이 대통령은 올림픽 유치를 위한 참모들의 건의는 100% 수용했다고 한다. 외국 순방을 가는 나라에 국제 스포츠계 핵심 인사들이 있다고 보고하면 반드시 30분 이상 시간을 할애해 만났다고 한다. IOC 총회에서 직접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한 것도 “소치올림픽 유치 때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영어·프랑스어 연설이 주효했다”는 건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준 결과였다고 한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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