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의사는 말하는 법부터 배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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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의 의사는 그야말로 바늘구멍을 통과한 수재들이다. 수능 성적이 상위 0.1% 이내다. 서울대 공대의 합격선이 지방대학의 의대 다음 순이다. 그만큼 사회적 대우와 신분 보장이 확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의사라는 호칭에 ‘선생님’을 붙이는 것도 그만큼 예우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일부 의사들은 최고의 엘리트로서, 현대의 ‘히포크라테스’로서 걸맞은 덕성과 품격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받고 있다.

 의료는 ‘서비스’다. 시혜가 아니라 환자에게 봉사하는 직능이다. 당연히 성심성의로 최선을 다해 진료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실제로 많은 의사들은 이런 자세를 가르치고 있다. 의사들의 서비스가 과거보다 더 좋아졌다는 평가도 많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의사들은 환자에게 불친절하고 거만한 자세를 보여 환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환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병인(病因)이나 치료과정을 자세히 설명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미국 버지니아텍 의대는 성적이 아니라 인성(人性)을 중심으로 입학생을 선발한다고 한다. 모토는 “의사가 되려면 말하는 법부터 배우라”는 것이다. 더불어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한다. 따라서 9차례에 걸친 ‘다중 인터뷰’도 주요 측정 대상이 품성과 자질이다. 직업 특성을 감안해 인성이 부족한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다. 의사에게는 환자와 소통, 동료와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발 방식은 스탠퍼드대·신시내티대·UCLA 등 미국의 유수한 대학들이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존경 받는 의사들은 명의의 기준을 “스펙보다는 라포르(rapport·의사와 환자의 심리적 신뢰)”라고 한다. 이러한 신뢰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가 환자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성적으로 선발하고, 점수로 재단하는 우리의 교육 실정에서 의료기술자가 아니라 인술(仁術)을 갖춘 의사를 키우기 위해서는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글로벌 경쟁에 나서려면 우리도 버지니아텍 의대를 본떠 선발부터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의료인으로서 인성을 도야(陶冶)하는 장치를 만들자. 의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