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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투자병원은 의료산업 미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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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서울 압구정동은 세계적인 ‘성형 클러스터’다. 일본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에서 고객들이 몰려든다. 난치병 치료에 억대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VIP환자들도 많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8만여 명에 이른다. 이를 두고 의료선진국이라며 뿌듯해한다면, 정말이지 우물 안 개구리다.

 우리보다 의료수준이 뒤떨어지는 인도는 73만 명, 말레이시아는 72만 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했다. 태국은 156만 명이다. 이유는 하나다. 투자개방형 병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세한 병원이 각개격파 식으로 환자를 유치하고 관리한다. 의료기관 5만9255곳 중 의원 2만7027곳, 치과의원 1만4242곳이다. 전체의 70%가 사실상 의사 1~2명이 운영하는 ‘나홀로 병원’인 셈이다. 그러니 첨단 의료장비나 신기술은 비용부담 때문에 엄두를 못 낸다.

 정부가 2009년 신성장동력으로 ‘글로벌 헬스케어’를 지정하면서 투자개방형 병원을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국 1%의 두뇌들이 모인 의료진의 수준에 적절한 투자가 결합되면 의료서비스의 새 지평이 열리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신중하게 추진하라”는 한마디에 발목이 잡혔다. 자칫 의료비 부담이 늘고, 의료 사각지대가 더 소외될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의료혜택의 불평등이 초래될 것이라는 친서민을 앞세운 양분법에 갇힌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도 직역(職域) 이기주의와 포퓰리즘이 느껴진다. 의료선진화는 투자개방을 통한 글로벌 산업화와 소외계층 보호 강화의 ‘투 트랙’으로 진행돼야 하는 것 아닌가. 의료산업도 투자와 경쟁은 품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춘다. 결국 의료소비자에게 득이다. 특히 글로벌 시대에 도약의 기회를 외면하고 내수 시장에만 매달리면 오히려 도태의 위기에 빠진다. 삼성이나 현대자동차가 내수시장에만 매달렸다면 벌써 도태됐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같은 빗장을 풀어줄 의료법 개정안이나 국민건강관리서비스업·의료채권법 등이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전국의 의료 취약지역에 446만 명이 살지만 의사와 1대1 원격진료가 여전히 불가능하다. 병원이 의료시설 확충을 위해 채권을 발행할 수도 없다. 결국 서울대병원과 미국 존스홉킨스대학병원의 합작도 공중에 뜨고, 한 의사의 ‘동북아 성형허브’ 꿈도 사라졌다. 인천 송도와 제주의 병원 부지에는 잡초만 자란다. 그러는 사이 중국에 들어선 7000개의 투자병원이 실력을 키우고 있다. 자칫 싼 골프관광처럼 한국의 의료수요를 위협하는 날이 미구에 닥치지 말란 법이 없다.

 투자병원은 미래형 ‘글로벌 헬스케어’의 첫걸음이다. 정보기술(IT)과 바이오기술(BT)을 결합한 신성장동력의 토대다. 이 분야의 시장규모는 4조7000억 달러로 자동차사업과 금융업을 합친 것보다 크다. 바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열쇠다. 정부와 국회가 속히 빗장을 풀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