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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왕〉링과 현실 어디가 더 폭력적인가

중앙일보

입력

〈반칙왕〉의 모티프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가면을 쓰고 사랑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레슬링이라는 소재를 택한 건 바로 복면을 쓴 반칙레슬러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런 캐릭터를 통해 처절하고도 슬픈 코미디를 해보고 싶었다.

여기에 1970년대적 감수성을 끌어왔다. 이 시대의 대중문화는 가장 화려하고 다이내믹했던 것 같다. 그 중 레슬링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맨몸으로 격렬하게 부딪치고 유일하게 반칙이 허용되는 점이 아주 원초적이면서도 매혹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속성이 조작성과 폭력성이라면 레슬링은 그런 속성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 또한 중요했다. 사회적으로 무능한 한 남자가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레슬링 체육관을 찾게 되고 반칙 레슬러로 활약한다.

그가 보여주는 좌충우돌식 코미디 속에서, 링과 현실 중 어느 쪽이 과연 더 폭력적이고 조작적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물론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떻게 코미디화할 것인가에 대한 부담감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너무 드러나는 코미디는 자제했다. 직설법으로 보여주기보다는 대사가 끝난 다음의 뉘앙스 같은 것에 집착했다.

때때로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될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애초에 생각한 대로 밀고 나갔다. 개봉 후 정확히 그 부분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들을 보면서, 코미디는 참 예측하기 어려운 장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영화에 관객들도 재미있어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송강호는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감독의 의도를 실현했다. 예를 들어 내가 다음 쇼트에서 어떤 뉘앙스의 코미디를 만들어야 되나 고민하다가 그를 쳐다보면 딱 그런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유례없는 코미디 연기를 보여주었다.

평소에도 감독보다는 배우가 보이는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작가의 의도를 끌고 가는 것은 결국 배우이기 때문이다.

송강호 외에도 레슬링관장 역의 장항선, 아버지 역의 신구, 부지점장 역의 송영창 등 중견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은 영화의 코미디에 톡톡한 기여를 했다. 무엇보다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영화가 나왔다는 점에서 그 분들에게 감사한다.

연기와 함께 가장 공들인 부분은 역시 레슬링 경기 장면이다. 한국 영화에서 최초로 다뤄지는 소재라 처음엔 좀 막막했다. 레슬링에서 시각적으로 강렬한 부분들을 영화적으로 구성해내는데 주력했다.

또한 거칠고 격한 운동이지만, 발레처럼 아름답게 보였으면 했다. 맨몸의 아름다움, 맨몸이 공중에서 퍼덕이는 장면, 그리고 정지 순간과 낙하 장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 위해 미국에서 포소토닉4ER이란 기종의 첨단 카메라를 들여오기도 했다. 이것은 스스로 최고가 되고 싶어하는 주인공 임대호의 심리상태를 제대로 승화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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