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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실패 용납 않으면 도전하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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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젊은이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인물로 꼽히곤 한다. 이력도 다채롭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지만 컴퓨터바이러스를 차단하는 벤처기업을 창업해 성공했다. 그러다 미국으로 유학 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돌아와 KAIST 교수로 지내다 지난 6월 서울대로 스카우트됐다. 젊은 나이에 포스코 이사회 의장도 지냈다. 외모만큼이나 생각도 반듯해 강사로도 인기가 높다. 그가 최근 중앙일보 기자들의 한 학습모임에서 쏟아낸 말들이 공명을 일으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삼성 같은 대기업도 망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먼저 우리 사회의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를 비판했다. 천재도 10개쯤 시도하다 하나를 건지는데 우리는 하나만 실패해도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무서워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않으니 첨단분야에서 창업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다들 말로는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행동은 다르다. 인재를 아끼기보다 그들을 질시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한두 번의 실패에 대해서도 ‘잘난 척하더니…’ 하는 반응부터 나온다. 경쟁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어떤 성공에 대해서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박수는 드물다. 그들이 도전에 성공해 기업을 만들 때 최고의 복지라는 일자리가 생겨난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은 투입하는 재정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힘들다. 한시적이라는 말이다. 신생기업을 북돋워야 경제의 주름살이 펴진다.

 안 교수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한국이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는 걸 막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기업이 많이 나와야 세상을 주도하는데 지금은 앞선 기업을 재빠르게 따라잡는 퍼스트 팔로어(first follower)만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점은 삼성도 예외가 아니고, 지금 상태로는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산업계에 팽배한 ‘좀비 이코노미’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좀비란 빈둥빈둥 놀면서 자원만 축내는 사람이나 기업을 지칭한다. 안 교수는 특히 돈이 안 되는 사업을 하면서도 정부의 눈먼 돈을 받아가며 연명하는 중소기업을 겨냥하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경쟁력은 없으면서 협회란 이름을 앞세워 로비와 네트워킹을 주업으로 삼는 기업인도 꽤나 흔하다. 현재 벤처기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 자신이 “협회를 없애야 기업이 건강해진다”고 말할 정도다. 좀비 문제는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금액이 작다고 회사 돈을 개인 용도에 쓰거나 일과시간에 주식투자를 하는 것도 그런 양태의 일부다.

 안 교수는 대기업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중소기업과의 불공정거래 관행도 꼬집었다. 사회의 양극화 문제나 만연한 부정부패를 이대로 두면 대한민국 모두 공멸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가진 사람들이 낡은 생각과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귀담아들어야 할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