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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털어 시작한 ‘무모한 도전’...16년 만에 알찬 컬렉션 일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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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호 04면

1 샐러리맨 컬렉터 미야쓰 다이스케.Shimabuku 2 미야쓰 다이스케의 집은 그 자체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다. 일명 ‘드림 하우스 프로젝트’.집을 설계한 사람은 개념미술가 도미니크 곤살레스 포스터. 3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지는 정연두 작가의 작품이다.

미술 컬렉션이라 하면 큰 기업이나 상당한 재력가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특히 신문지면에서 미술 작품 매매 가격이라도 보게 되면 미술시장은 ‘나와는 먼 당신’쯤으로 간주하기 쉽다.이런 맥락에서 일본 미야쓰 다이스케 컬렉션은 컬렉터란 어떤 사람이고, 컬렉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에 대해 신선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현재 40대 초반의 대기업 부장인 미야쓰 다이스케(津大)는 지난 16년간 미술작품을 수집해왔다. 그가 귀띔해준 몇몇 소장품만으로도 그 가치는 수십억원이 넘는 규모다. 샐러리맨이 어떻게 이런 규모의 컬렉션을 할 수 있었을까.

이지윤의 세계의 미술 컬렉터 <3> 샐러리맨 수집가 미야쓰 다이스케

시작은 구사마 야요이와의 운명적 만남이었다. “1995년 우연히 긴자를 지나가다가 어느 화랑에서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보았습니다.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지금은 국제 미술계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수퍼스타 작가 중 하나지만,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귀국한 구사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다. 특별한 미술사적 지식도 없었고, 그저 미술이 좋아 화랑을 돌아다니면서 작품을 즐기던 미야쓰는 그 작품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가격을 묻는 질문에 주인이 대답한 숫자는 자신의 1년치 연봉. 하지만 작품을 대하는 미야쓰의 정성스러운 태도에 감동받은 화랑 주인은 1년 동안 무이자 할부로 그에게 작품을 넘겨주었다.첫 발을 내딛자 발걸음은 빨라졌다. 책과 전시 보기를 통해 작가 연구를 본격화했다. 전시 오프닝마다 찾아가 작가들을 만났다.

마침 90년대 중반은 중요 현대미술 작가들이 막 일본을 찾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도미니크 곤살레스 포스터, 단 그래험, 다니엘 뷰랭, 크리스찬 볼탄스키 등 현대미술의 ‘선수’들이 작은 사립미술관 전시 등을 통해 일본 미술계에 소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미야쓰는 자신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소품부터 시작했다. 웬만한 미술관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작품일지라도 작가를 느낄 수 있었다면 그는 기꺼이 할부금 인생을 시작했다. 작품에 대한 이해와 연구는 작가에 대한 연구로, 다시 작가들과의 교제로 이어졌고 어느새 많은 작가들과 친구가 됐다.

그 결과 2004년 도쿄 오페라시티미술관에서 미야쓰 컬렉션전이 열렸다. 10년 전에는 어린 작가였지만 이제 어엿하게 중요 작가가 된 그의 친구들이 대거 참석해 미야쓰를 축하했다. 이미 구사마의 주요 회화 3점을 비롯해 국제적 지명도가 생긴 작가들의 작품을 100점 이상 소유한 그였다. 웬만한 사립미술관을 하나 만들 수 있는 컬렉터가 된 것이다.

이러한 작가들과의 친분은 그의 ‘드림 하우스’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작가에 의해 디자인되어 만들어진 작품 속에서 살고 싶다”는 그의 꿈이 현실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정착한 곳은 도쿄에서 조금 떨어진 지바의 이치카와시. 일상적인 작은 골목길 동네에 예쁜 공공 조각물 같은 단순하면서도 모던한 작은 집을 지었다. 그리 예사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위화감을 줄 정도의 ‘예술적’인 집은 절대 아니다.

이 집은 도미니크 곤살레스 포스터라는 유명한 미국 작가가 디자인했다. 80년대 미술 전시장 코너에 사탕을 가득 부어 넣은 작품으로 유명한 개념미술 작가다. 건축가가 아닌 미술가가 디자인한 집-. 그 차이는 집안에 들어가면 알게 된다. 모든 장식적인 요소 및 공간은 구역마다 선정된 작가들에 의해 장소 특정적으로 커미션됐다. 예를 들어 일본식 방은 요시토모 나라, 거실 전신거울은 구사마 야요이, 정원은 심마부쿠, 커튼은 소치 나카가와, 방 천장 콜라지는 테페이 카네우지, 의자는 수라시 쿠솔롱, 층계 벽은 정연두가 제작을 맡은 식이다. 여기에 최정화의 ‘플라스틱 파라다이스’(1998), 얀 파부르의 ‘Krijigers Rozerkraus Warror’s Rosary’(1996), 조셉 그리즐리의 ‘Backroom conversation’(1998) 등 100여 점의 컬렉션이 배치돼 있다. 말 그대로 ‘작품으로 제작된’ 집이다.

작품으로 주문 제작을 하는 것은 가격이 비싸고 그 결과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결정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작품을 보지 않고 전시 제안기획서만 갖고 전시를 진행하는 것은 웬만한 ‘선수’가 아니라면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야쓰와 20년 지기가 된 친구들은 그의 취향을 알기에 부담 없는 제안과 적은 비용으로 가장 좋은 ‘작품’을 만들어 냈다. 투자나 투기가 목적이 아닌, 진정으로 작품을 즐기고 좋아했던 그의 의지가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의미다.

물론 샐러리맨이 이 정도 컬렉션을 만든다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다. 그의 경우 그가 수집을 시작한 시기의 도쿄 미술시장은 글로벌화되는 과정에 들어선 과도기였다. 특히 2003~2008년은 세계 미술시장이 어느 때보다 큰 성장과 성황을 이룬 시기였다. 자연 스타 작가들의 탄생 역시 어느 시대보다도 수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그의 ‘드림 하우스’를 방문하고 받은 감동은, 알찬 컬렉션도 좋았지만 그 집에서 살고 있는 부부의 삶과 예술에 대한 ‘태도’에서 나왔다. 대단한 작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이나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식 같은 작품을 관리하면서 겸허하고 겸손하게 자신들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남편 월급을 미술작품 구입 비용으로 지불해온 부인의 존재감 역시 커 보였다.

“작가 친구들이 많으니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곳도 자주 방문했겠다”라는 질문에 이들 부부는 “아직 베니스엔 가보지 못했다. 그 대신 그 비용을 모아 작품을 구입했다”고 들려주었다. “다만 한국은 우리가 컬렉션을 한 최정화와 정연두 작가가 있고, 가깝기 때문에 방문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작품의 투자가치보다 작가에 대한 연구에 더 빠져있고, 오로지 좋은 작품 구입에 전념하는 이 부부의 다음 컬렉션이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이지윤씨는 런던에서 현대미술 전시기획 활동을 하며 코토드 미술연구원에서 박사 논문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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